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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똑 같다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5-12-16
<나름 제일로 꼽게 되는 남한 출신 중국 전문가를 만나고>
  
  필자는 많은 탈북인들 중에 고향에서 온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국경과 멀리 떨어진 북한 내륙에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 가장 폐쇄된 북한은 국경 지대에 갈 수 없게 단속이 매우 심하다. 따라서 국경과 멀리 있을수록 탈북자가 극소수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좁기도 하다. 희귀하게 남아 고향에서 오신 탈북 인사들이 있다.
  
  태어난 고향보다 더 오래 산 제2고향인 곳에서 온 설송아 탈북작가이다. <태양을 훔친 여자>를 비롯해서 여러 권의 책도 낸 지적이고 부지런한 탈북작가이고 박사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일찍이 소통하였지만 만나보기는 어제 처음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분들을 끌고 온다고 겸사 중국 전문가 박인성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요즘 박인성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에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꼭 뵙고 싶었는데 꿈이 즉시 현실이 되어 놀라도록 반가웠다.
  
  위에 제목에서처럼 왜 나름 제일로 꼽는 남한 출신 중국 전문가라고 했을까. 제 나름 공산권 전문가는 난코프 교수라고 했는데 이번에 박인성 교수를 추가하게 된다. 이 분들의 특징은 공산권 현지를 경험한 학자들이기에 남다르다. 난코프 교수는 소련 사람으로서 레닌그라드 대학 출신으로서 김일성 대학을 유학하였다. 여기서 긴 설명할 수 없지만 이분의 말 <소련은 라디오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이 한마디를 보고 저는 아! 이분은 정말 본질을 아는 분이구나. 아무튼 이렇게 느껴지는 또 한 분이 박인성 교수라고 말하고 싶다. 이분은 국토 통일원 연구원으로서 북경 유학을 하고 중국 대학에서 교수를 한 경력자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과 대화에서 논쟁할 거리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논쟁 내용 자체가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용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견드리게 되어서이다. 함께 하신 김영준 박사님도 용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심에 동지적이다.
  *묘하게도 영준이란 우리 아들 이름과 같아 더욱 친근해진다.^^
  
  대화 중에 <사회주의는 좋은 것인데>라는 문제이다. 사회주의는 인간 본능을 무시한 허구이며 심하게 말하면 사기주의이다. 사회주의는 사유를 부정하기에 허구이며 사기주의인 것이다. 물론 박인성 교수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 사회주의' '복지 자본주의'와 같은 개념이라고 즉시 해명하신다.
  
  하지만 사회주의란 말은 동일시되어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지고 이를 왜곡하는 좌파들도 있다. 실례로 사회주의는 좋은데 통치자들이 나빠서 문제라는 식이다. 특히 남한 사회에서 공산권이 무너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종북 좌파가 극심해지고 아직도 그 세력이 정권 실세들이란 현실이기에 심각한 것이다. 이들은 수만 명의 탈북자가 발생되고 곁에 있음에도 막무가내이다.
  
  또한 실례로 황석영이란 남한사회의 유명한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 그는 북한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며 책을 냈다. 유명한 작가의 소리인 만큼 사람들은 유명하게 들려 혼란에 빠진다. 아니 북한은 짐승이 산다고 누가 말했는가. 거기도 사람이 산다. 하지만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게 사는 현실이기에 생지옥이라고 한다. <천하의 작가> 황석영이란 지성인도 이렇게 혼란스러운 말을 한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용어 선택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 분망한 여기와 달리 북한은 용어 선택은 분명하다. 북한에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이다. 박인성 교수식의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칸디아 반도 나라들인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이다.
  
  왜 속성은 같은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고 했을까. 공산주의 초기 단계를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사실 말장난인 것일 뿐 똑같은 속성인 것이다. 북한에서 사회주의 나라를 꼽는 것을 공산당이 정권이 쥔 나라이다. 원리원칙대로이면 공산당 정권에다 경제마저 국영화된 것이다. 국영화 개념에는 협동화도 있는데 그것도 말장난일 뿐 똑같은 것이다. 가령 협동농장이라고 해서 농장이 제 마음대로 절대 할 수 없다.
  
  결론하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똑 같은 말이나 다름없다. 사회주의는 좋은 것이야! 하면 공산주의도 좋은 것이야! 로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학자들, 많은 국민이 혼란을 가지게 된다. 이를 악용하는 세력도 있다. 주로 좌파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좋은 것이야!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박인성 교수님이 말한 사회주의는 좋은 것이야!는 북한에서 명명한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던가 아니면 <복지 자본주의>라고 하던가 등의 용어로 선정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논쟁 거리를 논한다. 공산주의 때문에 자본주의가 복지 자본주의로 되었다. 이 말이 모두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진영 경쟁에서 견제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 자본가 아니 저는 자산가라고 하고 싶다.
  *자본가는 공업적이어서 농업의 지주는 배제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자산가들 입장에 서보자. 실례로 영국이나 미국의 자산가들이 먼 소련의 공산주의를 의식해서 탐욕을 자제하며 복지에 신경을 쓸까. 책상머리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의 자산가들은 당장 곁의 노조 같은 견제 세력을 더 의식하여 복지에 신경 쓴다는 것이다.
  
  또 하나 논쟁 거리를 논한다. 맑스는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 소년공을 비롯한 비참한 노동자들을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반면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을 반대하여 공산주의를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얼핏 보건데 이는 아주 인도주의적인 것으로 비쳐진다. 그 인도주의가 얼마나 극악한 비인도주의라는 결과는 차지하고 이렇게 인도주의란 인상만 남기며 말하게 된다.
  
  곰곰히 따져 생각해보자. 산업 혁명 초기 비참한 노동자이지만 직업을 가진 자이다. 사실 비참한 노동자보다 더 비참한 자는 실업자이다. 이렇게 보면 실업자보다 비참한 노동자가 훨씬 좋은 위치이다. 또 비참한 노동자는 영원히 비참한 것이 아니다. 발전하여 가면서 작업 제도도 개선되어왔고 직업도 늘어났다. 이런 과정을 겪은 것이 오늘의 선진국들이다.
  
  그럼에도 공산주의가 있었기에 복지 자본주의가 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공산주의가 없었으면 복지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논리 비약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정말 공산주의가 없었으면 복지 자본주의가 안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맑스주의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말해준다.
  
  빵을 만든 사장이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한 것이 결국 부와 함께 남을 위한 선으로 흐른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 속담 <쌀 독에서 인심이 난다.>가 한국판 아담 스미스 주장이다. 이를 잘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함부로 인간 본능에 반한 맑스의 폭력 혁명을 미화하게 되는 것이다. 본의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논거들은 많다. 일부다처제를 무작정 욕할 수 있을까. 한 끼가 새로운 처지의 여성들이 배부르게 하는 남자의 첩으로 되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이를 정조만 따지며 여자와 남자를 비난할 수 있을까. 또 가까운 생생한 실례로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 문제이다.
  탈북자 돕기를 위해 중국 현지에 갔을 때이다. 탈북여성들이 비참한 인신 매매 현실로 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구석에 있던 탈북 남자가 그런다. <탈북여자들은 좀 낫습네다. 우린 몸 팔 것도 없습네다.> 탈북자들은 정조고 뭐고 죽느냐 사느냐 처지에 서 있다. 이들 보고 정조가 뭐고 따질 수 있을까. 기본적 생활과 안정이 보장되면 이런 비참한 현상은 자연히 개선되어 간다.
  
  우리 민족사에 가깝게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를 보자. 소련군의 강간 만행은 유럽이나 한반도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대낮에도 여자를 만나면 빙 둘러 막고 윤간한 사실은 무수히 많다. 이에 비해 일본군은 성병과 민원을 생각하여 제도적인 위안부를 운영했다. 군대가 강제로 끌어갔다고 하는데 역사 자료는 절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시절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또는 돈을 위해 부모가 떠밀고 또는 본인이 위안부로 갔다. 강제로 무보수로 끌어갔는데 가만 있었다면 조선의 부모 오빠들은 바보들이란 말인가. 사실이 이럼에도 소련군의 강간보다 일본군의 위안부를 더 나쁜 것처럼 지속적으로 현재도 논하고 있다.
  
  논거가 길어져 마치려 한다. 용어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사실을 놓고 인식을 정확히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 지성인들이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지성인들 중에서 체험을 겸비한 자들이 결정적이라고 본다. 그런 적임자로서 만남이 매우 고귀하다고 보며 이를 계속 꽃피워갔으면 한다. 봉사적으로 유튜브 방송도 참여하고 세미나도 하고 책도 쓰고 하였으면 더 없이 의로운 만남과 삶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한민족대서사시 2025-12-17 오전 10:39:00
    가끔씩 올라오는 이민복 선생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계속해서 선생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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