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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돼지'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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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천안함 폭침 사건 이전에 이를 예상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대청도 해전이 있었지요. 그때 백령도에 대북풍선을 위해 갔다 오는 배 안에서 함께 한 신변보호 형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제는 잠수함으로 해볼 겁니다. 얼마 후 정말 천안함이 폭침됩니다.
예상이 맞아떨어져 형사들이 놀랍니다. 예상을 맞춘 것은 점쟁이어서가 아니라 상식이었습니다. 3차에 걸친 해상 전투에서 전투함 수준이 너무 떨어져 번번히 깨어진 북한입니다. 이제 해볼 건 잠수함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차에 걸친 해상전 모두 북한이 먼저 도발한 것입니다. 천안함 폭침뿐 아니라 연평도 포격까지 강행합니다.
아무리 힘이 세도 약한 자가 기습하면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세계 최강 미국도 이스라엘도 당합니다. 하지만 남한과는 다릅니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대처와 요즘 이스라엘의 하마스, 헤즈블라, 이란과의 전쟁이 보여줍니다. 한번 건드리면 망할 정도로 혼을 냅니다. 하지만 남한은 그러지 못해 계속 당합니다. 지금도 북한에 아부하듯 저자세입니다.
평화를 위해 아부하면 역설적으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역사입니다. 히틀러 앞에 챔벌린처럼 아부하다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히틀러 앞에 아부하던 스탈린 때문에 소독(蘇獨)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북한 앞에 아부하는 남한이 그 꼴입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그 꼴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공산종주국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진 속에서 기초적인 배급도 못 주는 북한 역시 더욱 망한 나라입니다. 전쟁도 아닌 평화시에 300만 명이 굶어죽는 북한입니다. 경제력은 남한의 제주도 경제력도 안되 고흥군 경제력 밖에 안되는 형편입니다. 전세계에서 목탄차가 다니는 유일 나라, 야밤 인공위성에서 전기가 없는 유일 나라가 북한입니다. 이런 북한에 번번히 당하는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가 약해서입니다.
천만다행으로 6·25 전쟁시 국력이 아닌 북한이기에 전쟁으로까지 번져지지 않았지요. 아마도 남한 국력의 10분의 1만 되어도 전쟁을 했을 겁니다. 미군만 없다면 더욱 그렇지요. 전쟁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는 북한일 망정이지 속은 살아서 그럽니다. 살찐 돼지새끼 같은 남조선 괴뢰도당 하면서 우습게 보고 있지요.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갑니까, 특등머저리, 삶은 소대가리하고 해도 찍소리 못하고 오히려 아부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니까요.
싸움에서 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몇가지 경험을 말하려 합니다. 국가간 싸움도 애들 싸움 같다고 하니 어렸을 때 실례를 들겠습니다.
<이민복 학생이 아니면 학부형회의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인민학교(초등학교) 때 그만큼 망종이었습니다. 이러다 아들 망치겠다고 아빠가 무섭게 나섭니다. 어느 정도였나면 아빠가 빨리 죽었으면 할 정도로 싫었으니까요. 아빠의 무서운 통제로 술 담배 안하고 공부만 하는 착한 학생으로 된 건 사실입니다. 착해졌다는 것은 한편 기가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구박하다가 구박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김복남이란 학급장이 자기 책가방을 들고 가라고 합니다. 늦은 시간 모두 힘든 속에 남의 가방까지 들고 간다는 것이 말이 안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주먹이 날아옵니다. 당장에 코피가 터졌습니다. 피를 보자 어렸을 때 기를 살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읍 인민학교 씨름선수였기에 결심하면 누구도 못 당하지요.
*황해북도 서흥군 읍 신막 인민학교
학교 육상선수였던 학급장 김복남도 이를 잘 아니 줄행랑을 놉니다. 뛰길 내기에서 그를 이길 수 없으니 놓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도망가 봤자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김복남 집은 강가의 하모니카 주택 가운데였습니다. 초겨울이라 김장독을 묻고 옥수수 집으로 꼬깔을 씌운 것들이 집 앞마당에 있습니다. 여기에 강가 옆이니 조약돌이 많아 쌓아 놓고 투척하기 시작합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윙윙거리며 돌이 날아가 기와장을 때립니다. 고요한 밤에 기와장 깨지는 소리는 폭탄 터지는 것처럼 요란합니다. 그리고 어디서 윙윙거리며 날아오는지 몰라 무서워 온 하모니카 집들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시멘트로 만든 김복남이 집 기와장은 모두 박살이 날 판입니다. 아마 한 시간 동안 돌이 날아갔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누구도 못 말리는 속에 그래도 <민복 아!> 하면서 뒤에서 나를 덮쳐 안는 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였습니다.
김복남이네가 우리 엄마에게 가서 통사정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절대 민 돼지를 건드리지 말라!"가 되었습니다. 전 학교적으로 이 말이 신조어처럼 퍼져 나는 평온해졌습니다. 민 돼지는 나의 어렸을 때 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