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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기를 번쩍 들고 나온 꼬부랑 할머니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6-03-30
내가 있던 농업과학원 평남도 순천군 은산노동자구, 현재는 은산군 읍에서 화재가 난 적이 있다. 우리가 놀란 것은 평시 운신이나 겨우 하던 꼬부랑 할머니가 집안에 재봉기를 번쩍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집보다 재봉기가 더 귀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 할머니의 초능력에 놀랐던 것이다. 초능력의 원천은 내 물건을 건져야 한다는 데 있다.
  
  1992년 탈북하여 체류해 있던 중국 연길 기차역에서이다. 한국에 노무자로 가는 집 주인의 짐을 들어다 주기 위해 아직 밝기 전의 새벽시간 기차역에 간 것이다. 당시는 한겨울로서 내륙의 연길은 몹시 추운 때이다. 그런데 역전 앞에 줄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들에 뭘 요리하여 팔려는지 수증기들이 피어오른다. 너무 추운 때라 손님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사를 위해 분주한 이들을 보며 감탄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 빡세게 하는 사상 교육으로 이렇게 열심히 하게 할 수 있을까. 내 것이 되는 개혁 개방 된 중국은 사상교육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자각적이었다. 그때부터 34년 되는 지금 중국은 세계경제 2위 국가로 발돋음되었다.
  
  물같이 쓴다는 말처럼 물이 흔하면 귀한 줄 모른다. 내가 일하면 내 것이 되는 여기는 너무나 당연하기에 이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정작 실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태어난 해에 북한은 공산화가 완성되어 보이지 않는 손이 말살된 속에서 자라고 배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위대함을 수치로 깨달은 사람이다. 그 많은 직업 중에 수치로 말하는 과학자 직업 덕분에 가능하였다.
  
  소련을 당장 공산주의 이상 사회로 만들겠다고 나선 이가 흐루시초프 공산당 총비서였다. 조만간 미국을 압도할 것이라며 손에 쳐든 것이 팔뚝만한 옥수수이다. 이에 한 수를 더 뜬 김일성은 <쌀은 공산주의!>라고 했다. 하지만 공산국가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한 나라는 없다. 그 여파로 흐루시초프는 1964년에 실각하였다. 그럼에도 반복하여 중국 공산당 주석 모택동은 약 6천만 명을 아사시키다 1976년 죽었다. 북한의 김 부자 역시 작은 나라에서 300만 명을 아사시키다 죽었다.
  
  식량문제는 공산화를 사유화했을 때에만 해결되었다. 이런 결과를 농업 과학자로서 필자는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개혁개방 정책으로 개인농하는 중국을 압록강에서 직접 본 것이다. 현지 연구사업으로 나가있었던 1985년부터 탈북 전인 1990년 사이이다. 중국은 북한보다 훨씬 못 살아 중국 내 조선족들이 넘어 올 정도였다. 그러던 중국이 정책 하나 바뀌었는데 천지개벽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수치화하고 싶었다. 마침 국가 농업과학자였기에 가능하였다. 중국 장백현 14도구와 마주한 압록강변의 김정숙군 풍양리 5반(보파리)에서 실험하였다. 산골 지대에서 1인당 농민들이 감당하는 1정보(3천 평)를 단위로 비교 시험하였다. 중국과 똑같은 기후와 토질이었다. 실험 기간은 3년 이었는데 중국처럼 똑같이 소출이 높아졌다. 1정보당 1톤 정도 나던 옥수수가 개인농을 하니 7톤으로 증수되었다. 프로 수로 따지면 700% 증산이다. 주식으로 따지면 700% 수익이다.
  
  생물증산은 기껏 증산해야 기존에 비해 1 내지 3%만 해도 혁신이다. 그런데 700%라니 이 수치에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이 놀랐다. 개인화하면 능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런 천문학적 수치 차이로 나타낼 줄을 몰랐던 것이다. 내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수치화한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때가 1990년이니 이것을 받아들였다면 그후의 대량아사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기술적 연구보다 경영 즉 정책 하나 바꾸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가장 충성분자에 속했던 나는 <어버이수령님>(김일성)께 편지 올렸다. 북한에서는 중앙당 제1호 편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 위대한 농업증산 수치 즉 보이지 않는 손은 북한에서는 반동사상이었다.
  
  이에 대단히 실망하고 있을 때 마침 남조선 삐라를 보게 되어 탈북을 결심한다(1990년 11월19일). 삐라를 통해 일제를 타승한 8·15 해방자, 6·25 미국 침략을 막은 위대한 수령이 아니라 정반대의 사기꾼을 알게 된 것이다. 또 오직 권력 유지를 위해 혁명적인 식량증산을 반동이라는 독재자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술,담배를 금하고 오직 충성밖에 몰랐던 나도 탈북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순직했던 자가 목숨을 건 탈북을 결심한 것이다. 경전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대로이다.
  
  탈북 과정은 순탄치 않아 약 5년이나 걸려 남한에 오게 되었다. 이 과정 북한을 비롯한 네개 나라 감옥을 거쳐야 했다. 인생에 가장 가혹한 과정들이었지만 그 대가를 엄청 큰 은혜로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정치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보여주었다. 그 보이지 않는 정치의 위대함은 다음 호에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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