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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으로 또 난리, 참 한가하다
무학산(회원)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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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동서남북] 광화문 현판은 그냥 두라》
좋은 기사다. 저 칼럼을 쓴 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저런 분이 깬 사람이요 시대가 요구하는 애국자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 중건된 광화문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일제에 의해 옮겨졌고, 6·25 때 불타며 현판도 전소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원래 위치에 재건하면서 친필 한글 현판을 달았으나, 노무현 정부 때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 속에 철거됐다.”
소실된 광화문을 중건한 고종도 고맙고,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세운 박정희 각하도 고맙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생신지은(生身之恩)과 양육지은(養育之恩)”이다. 그리고 “생의(生衣)보다 육의(育衣)가 더 중하다”는 가르침도 있다. 광화문을 맨 처음 건립한 사람이 생물학적 아버지라면, 복원한 박정희 각하는 길러주고 가르친 양아버지다 그분이 쓴 현판을 떼서 내다버리고 다른 현판을 달았다가 이제 또 다른 현판을 달겠다니 이야말로 낯간지러운 애국놀이요 돈을 못써서 환장한 짓이다. 샤우비니스트(Chauvinist)나 ‘쇼윈도 애국자’들이 흔히 저런다.
지금을 위해, 후손을 위해 쇳덩어리처럼 일하고 자린고비처럼 아껴도 모자랄 판에, 빛바랜 역사 속 건물의 현판 하나를 이리저리 바꾸어 달고 이게 옳니 저게 옳니 다툰다니 조선조의 당쟁보다 못한 헛짓거리 아닌가. 원대한 비전이 없고 그 비전을 세울 재주도, 이룰 능력도 없기에 저런 일이나마 하여서 애국자로 자리매김되기 위해서 저럴 것이다. “애국심은 악당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사무엘 존슨-
광화문을 우러르는 우리의 마음이 대단할 뿐, 사실 광화문의 건축미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광화문에 집착한다. 그것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보1호인 까닭에서인지 그 연유를 모르겠다. 집착에만 그치지 않고 또 현판을 바꾸면서 곁들여 한자 현판도 달고, 한글 현판도 달겠다는데는 차라리 헛웃음이 나온다. 문패를 두 개 단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그런다는 주장이 있는 모양이며 이번 한글날을 기해 달겠다 벼른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외국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영어 현판도 달 일이다. 문패를 두 개 달자면서 세 개는 못 달 게 뭐 있나. TV에 북한 군인들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나와 허세를 부리듯 광화문 문패도 조롱조롱 달리면 아름다운 그림이겠다.
1934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수탈하기 위해 편의적으로 번호를 매겼는데, 이때 광화문을 '조선 보물 1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 어쩌다가 ‘친일’일 것 같은, 시(詩) 하나를 지었다고 하여, 그가 지은 교가를 다른 것으로 바꾸곤 한 것은 2019년 무렵의 일이다. 그렇다면 조선총독부가 ‘1호’로 지정한 것을 지금까지 왜 우리도 1호로 받들까? ‘1호’로 숭배하려면 차라리 ‘특1호’라 하여 ‘특’이란 한 글자를 더 보태면 더 우러러 보일 것이다. 일본인이 책상에 앉아 자기네 쪼대로 번호 매긴 '1호'를, 우리가 그대로 1호로 따라 쓰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거룩한 내 나라 유물을 남이 정한 순서대로 손꼽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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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는 ‘일제’의 입김만 있는 게 아니고 명나라의 ‘간섭’도 있었다 .
"만력 임진년 여름에 왜구가 서울을 함락하고 멋대로 불을 지르니, 광화문 종과 종루의 종도 모두 불에 녹게 되었다. 계사년 여름에 왜구가 물러가자, 그해 겨울에 성상이 환도(還都)하였고, 갑오년 가을에는 남대문에 종을 걸어 새벽과 저녁으로 울리게 하니, 그 종 소리를 듣는 서울 사람들이 슬퍼하면서도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정유년 겨울에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가 서울에 와서는 종을 명례동(明禮洞) 고개 위에 옮겨달도록 명령하였다." –견한잡록(遣閑雜錄)- 조선시대 문신 심수경(沈守慶)이 쓴 제도⸱풍속⸱시화(詩話) 등을 수록한 잡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