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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이런 영부인을 가져보나? 박선영(前 진실·화해위 위원장) 페이스북  |  2026-06-07
어떻게 하면 자유민주 국가에서 전직 대통령 부인이 호감도 81%를 받을 수 있을까? 시락 前 대통령 부인 베르나데트 시락 여사. Bernadette Thérèse Marie Chirac. 그녀가 사망했다고 프랑스 언론이 보도하네. 남편은 성격이 급하다고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졌었고, 부인은 느긋하다고 해서 '거북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부부.
  
  내가 빠리에 있던 80년대 초반에 시락은 빠리시장이었다. 빠리시장 무려 18년에 총리 두 번, 장관직 두 번, 대통령 12년. 총 34년을 공직, 그것도 어떤 직이든 수장만 34년을 했으면 하다 못 해 수억 원의 옷값이나 과일값, 초밥 등 카드값이라도 빈틈을 보였으련만….
  
  처음부터 그녀는 지금까지 박수를 받았다. 불도저 남편이 먼저 떠나고 7년을 홀로 사는 동안에도 전혀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다. 대통령 재직 중에 남편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면, 부인 거북이가 나서서 그 우아한 얼굴을 들이대며, 남편 편을 공개적, 역설적으로 들어 위기를 모면할 정도로 베르나데트는 당당했다. 결코 다소곳하거나 음지에서 숨을 죽이며 얌전히 있지도 않았다.
  
  젊어서는 공산당원이었다가 강경보수 성향인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따뜻한 보수'를 표방하며,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감면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이라크전쟁 반대 같은 반미정책까지 시행하니 언론도 얼마나 시끄러웠겠는가? 게다가 이런저런 남편의 성적 스캔들도 난무했으나~~ 그녀는 꼿꼿하고 당당했다. 언론활동도 적극적이었고.
  
  이런 베르나데트의 행보에 장관과 대통령 보좌관들도 그녀의 행사에 동행하거나 참석할 정도였다. 그녀의 위상은 그만큼 높았다. 그러니 르몽드 같은 신문은 아예 대놓고 "베르나데트 시라크, 부통령"이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지금도 변치 않고. 딸만 셋. 둘은 시락 부부의 딸. 한 명은 위탁받아 키운 딸.
  
  이런 베르나데트를 나도 좋아했다. 그러나 말년엔 시련도 있었다. 시락이 빠리시장 재직시절. 1990~1995년 공화연합당(RPR) 측근들을 빠리시청 공무원으로 이름을 올려서 월급을 탈 수 있게 했다. 일종의 독직죄였다. 그러나 수사 중에 시락은 대통령이 되었다. 재판 중이 아니라 수사 중에.
  
  그리고 2007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수사가 재개되어 기소되고, 재판을 받아 2019년 3월, 법원은 2년 징역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때 시라크는 이미 치매를 앓고 있었고, 6개월 후인 9월에 사망했다.
  
  '거북이'답게 때로는 한 템포 느리게, 그러나 남편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면 당당하게 나서서 남편을 옹호하던 그녀가 오늘, 93살의 삶을 접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잡다하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우리는 언제 이런 영부인을 가져보나?
  
  *우아하고 영민했던 베르나데트. 몽빠르나스 공동묘지, 남편 옆에 나란히 누울 그대여, 비록 나는 이방인 étrangerère지만 그대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시락 前 대통령 장례식을 내가 좋아하는 생 쉴피스 성당에서 했네. 미세스 시락 장례식도 거기서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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