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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애원을 들으소서…'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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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를 한 달 전부터 보게 된 계기>
우리 어머님같은 나이의 탈북자를 알게 되어 - 이분은 자유와 풍요의 일본에서 지옥같은 북한에 북송된 재일교포. 어머니 조국이라고 찾아간 그곳. 하지만 착하고 문화적이고 지적인 그에게 두 아들을 차례로 잡아가 죽게 하고 그 충격으로 남편마저 죽고 남은 딸 하나 때문에 차마 죽지못해. 그러다 도청당하는 것을 피해 일본에 있는 형제와 통화를 위해 잠시 중국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자니 온 몸과 영혼이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하여 자신도 모르게 중국에 남아. 하지만 중국에서 손녀를 납치당하는 고통의 연속과 불법체류자로서 북송되어 죽을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남한에 오게 된 분. 이제는 자유와 풍요의 조국에서 마지막 남은 자식인 딸과 함께 행복을 만끽하는가 했는데 불행은 여기서도 그치지 않아. 어린 두 손자를 둔 딸의 남편 즉 사위가 막대한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하기도 싫은 행위로 타국에서 무기징역.
너무 우리 어머니같아 뭔가 위로를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그분이 일본에 계실 때 성당에 다니신 연고로 여기 와서도 모든 고통을 위로받기 위해 성당에 다니신다고 함. 그런데 넘어지셔 허리를 상해 성당도 못 다니신다기에 성가를 골라드려 위로를 드린다는 목적에서 성가를 찾게 됨. 이것이 성가와의 인연 시작인데 누구보다 제가 은혜를 더 입게 됨. <우리의 애원을 들으소서…구원의 샘이여…위로의 샘이여! 이 세상 죽을 때 이 영혼 돌보사. 영원한 행복을 주옵소서! >
위에 올린 성가는 제가 죽음의 막다른 속에 부르짖음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와 같은 영감으로 들려 제 나름 올렸습니다. 본래 저는 개신교도이며 부족한대로 개신교 북한선교사 - 1992년6월25일 북한 - 중국- 러시아 탈출노정인 하바롭스크에서 처음 개신교 선교사 유영길 목사를 만나 기독교를 처음 접해. 모스크바에서 4년 있는 동안 개신교인 감리교, 장로교, 여의도 순복음교회 선교사들을 만났고 신학교도 다니다가 1995년 남한입국, 섭리의 인도로 서울에서 신학대학원 두 개를 나왔고 30년 가까이 쭉 개신교적 북한선교와 통일운동가로 활동.
왜 그런지 이 성가는 중쏘(中蘇) 국경을 넘을 때 죽음의 총구 앞 마지막 부르짖음 소리처럼 들리고…살아난 은혜 때문인지 눈물이 나네요. 모두 저 같지 않겠지만 조용할 때 한번만 들어보세요.
*참 기가막힘! 이 글 쓴 오늘 글에 주인공 탈북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네요. 방금 그 따님으로부터 연락해보아 알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