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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주도적으로 살라? 몇이나 되겠나 무학산(회원)  |  2026-08-04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잘 쉬어도 기운이 없는 당신에게…잃어버린 '기쁨 수명'을 되찾는 법》
  
  기사의 허두에 이런 대목이 있는데 가장 강조하고 싶었기에 처음에 썼을 것이다.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라니? 자기 삶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진시황제도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권세를 가진 정치인도 정치적 문제로 다투고 살며, 호화로운 사업가도 사업상의 문제로 고뇌하며 산다. 경쟁 없이 살지는 못하는데 어떻게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가 그러기를 원하는 때문에 이 세상이 사바세계가 됐지 싶다.
  
  그리고 ‘타인과 교감'이라고도 했다. 타인과 교감하는 데에는 타협과 양보 등의 쎄빠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라 해놓고 그 다음에 ’타인과 교감‘ 운운한 것은 모순어법이다.
  
  인생은 의무이다. 어려서는 기어야 될 의무를 받았고, 학생 때는 공부해야 할 의무를 졌고, 졸업해서는 땀흘려 일해야 할 의무를. 가정을 꾸려야 할 의무를, 가정을 이끌어야 할 의무를. 자식을 키워야 할 의무를. 교육시켜야 할 의무를 치르다가 일생을 마감한다.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 여가가 몇 번이나 있었겠나.
  
  인생에 언제 한번 영일(寧日)이 주어졌든가. 그래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고통(人生是苦)이라 했을 것이다. 또한 일체개고 (一切皆苦)요 시시프스의 형벌인 것이다.
  
  성경도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했다 –창세기 3:17- 인간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통해서만 겨우 살아갈 수 있게 입력된 존재이다. 정호승 시인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고 했다. 인생도 오죽 제 살기가 바빴으면 그랬겠나.
  
  세상사 다 그러하듯, 예외적 인생은 있을 것이다. 밥알에 뉘 섞이듯 한 그런 예외적 존재만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살 수 있다. 신문 기사는 파격적 존재만을 독자 삼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말을 저렇게 하면, 화자(話者)는 돋보이게 되고 청자는 기가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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