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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解禁 없는 ‘보수’ 정권교체는 소용없다 박경범(작가)  |  2026-08-07
<善과 惡의 再認識 필요>
  
  요즘 社會正義를 한마디깨나 하는 사람 중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惡의 平凡性을 論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사회의 극단적 진영대립 중에 빈번히 인용되지만 상대를 惡으로 규정하는 도구일 뿐 막상 그 善과 惡이 무엇인지에 對한 省察은 결여된다.
  
  보통 타인을 배려하는 利他心을 善, 타인과 싸우는 利己心을 惡이라 한다. 그러나 역사적 聖賢의 사례를 보면 이런 기준은 무너진다. 孔子는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제자를 의롭다고 칭송했으며 현인의 대명사인 소크라테스 역시 重裝步兵으로 敵과 싸웠다. 성경에는 다윗이 戰果를 증명하기 위해 割禮 받지 않은 異邦人의 陽皮를 多數 베어오는 행위를 높이 평가했다. 陽明學의 王陽明 또한 군대를 이끌고 實戰했다.
  
  타인과 경쟁하고 싸워 이기려는 행위를 악으로 볼 수 없다. 축구 경기 등에서 승리하기 위해 氣를 쓰고 훈련하는 행위는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중국과의 축구 시합에서 져준다면 단련을 포기하는 知的 靈的 퇴보이자 惡이 될 것이다.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가 말했듯 善惡의 定義는 인간이 영적 존재를 얼마나 强化하고 成長시키는가의 與否에 두어야 한다. 이타심은 靈的 발전으로 視野가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善은 인간을 지적 영적으로 향상하여 성장시키는 것이고 惡은 인간을 지적 영적으로 퇴보시켜 頹落(퇴락)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善을 이루어 인간의 성장이 절대평가를 받으면 인간의 성취는 전쟁에 의한 상대평가를 받을 필요도 없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고발한 惡의 평범성은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지도자나 시스템의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대중의 無思惟에 있다. 정확한 意思表示의 기회를 가져야 할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 대중의 知力을 낮춰 영혼을 타락시키는 거대한 흐름에 무심코 동조하는 평범한 개인들이 惡의 실천자가 된다.
  
  <좌파정권 집권 이후의 우리 민족 파괴 회복되어야 진정한 保守政權>
  
  한국에서의 이러한 惡의 역사는 일제시대의 (한글전용소설)문화정책,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한글전용법, 그리고 산업화시대의 한자사용 단속 等으로 계속 우리 민족을 흔들어 왔지만 결정타를 가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의 각종의 한자사용 제한 실천이었다. 그 전까지는 外勢의 직접압력 혹은 외세의 지원을 받는 임의단체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민족언어 변화의 형식을 갖춘 것이었을 뿐 지도층 사회에서의 언어사용은 큰 변화가 없었으나 이제 새로이 권력을 잡은 좌파지도층은 맑스의 唯物史觀에 依據해 단순한 이념차원에서의 싸움은 무의미하고 오직 혁명적 실천만이 유일하고 참다운 것이라 하여 언어변화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그 때까지 이어왔던 민족정신문화의 숨통을 조인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민족파괴의 마무리 작업으로 국기에 對한 맹세에서 ‘민족’을 삭제했는데 당시 노 정권을 ‘증오’하던 新보수운동세력은 全的으로 찬동했다.
  
  이후의 所謂 (뉴라이트) 보수정권은 전통보수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은커녕 오래 집권하면 행여나 전통 보수세력이 反騰(반등)할까 하는 두려움에 적당한 時機에 정권을 좌파로 돌려주고는 더욱 이 나라의 전통정신을 무너뜨리고 저네의 이익을 위한 해양지향 일변도의 노선만을 강화하면서 집권 여부와는 상관없이 좌파와의 대립 속에 저네 세력의 존재감을 돋보이고자만 했다. 대다수의 상식적 보수성향 국민은 몇몇 부동산정책이나 局地的인 경제정책으로 시늉을 보이는 이른바 보수정파에 더는 이용당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역사 문화를 否定하는 좌파정권과의 분명한 차별화, 김대중 노무현 정권 以前의 민족 주류정신이 살아남아 있었던 보수정치로 돌아갈 용기가 없다면 국민은 가짜 보수정권으로의 교체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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