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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一善도 못 했어요. 전부 위선이었어요"
엄상익(변호사)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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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회칠한 무덤이었다>
이십대 말쯤이었다. 사법고시 합격증을 받는 자리에 갔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고교 동기였다. 하얀 얼굴에 두툼한 입술이었다. 졸업 후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됐다.
“졸병으로 군대에 갔는데 대장 관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당번병이 된 거야. 편하다고 모두 바라는 자리였지. 밥도 대장 가족하고 같이 먹고 말이야.”
그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마다 대장 부인이 기도를 하는 데 세계평화와 남북통일, 국가부터 남편, 자식의 건강까지 밥을 앞에 놓고 끝도 없이 말하는 거야. 어느 날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도중에 나가 버렸지.”
하나님은 세세히 말을 해야 알아듣는 분일까.
“그걸 대장인 남편에게 일렀는지 내가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어. 그 다음부터는 장황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부 위선처럼 보여.”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제대를 하고 회사에 취직했는데 정말 힘들더라구. 한번은 상관이 내게 ‘아부하는 법’이라는 책을 가져다주면서 보라는 거야. 내가 뻣뻣해 보였나 봐. 무슨 일이든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방법들인 거야. 같잖아서 안 봤지.”
그런 책들이 서점을 꽉 채운 적이 있었다.
“그 다음 회의 시간이었어. 상관이 나보고 봤느냐고 물어서 안 봤다고 했더니 그렇게 말을 안 들을 거면 회사는 왜 다니느냐고 그러더라구.”
그의 눈에서 번쩍하는 빛이 났다.
“그래서 그럼 관두겠다고 했더니 말로만 하지 말고 사표를 쓰고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라는 거야. 그래서 사표 쓰고 도장 찍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어. 그랬더니 당황하더라구.”
몇 년 전 기독교계의 어른으로 알려진 엄두섭 목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에게 한마디라도 듣고 싶었다. 96세의 그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노환으로 방에 누워있던 그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거실로 나와 나를 맞이했다. 고목껍질 같이 바짝 마른 얼굴이었다.
“평생 일선(一善)도 못 했어요. 전부 위선이었어요. 젊은 날 내가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위선이었어.”
어떻게 자신의 일생에 대해 저렇게 단호한 고백을 할 수 있을까. 그날 나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칠십대 중반의 고개를 넘고 있는 나는 지금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책상 구석에 놓인 스마트 폰에서 재즈로 편곡된 찬송가가 잔잔한 파문을 만들며 흘러나오고 있다.
사십년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얼마나 위선을 했을까. 기억의 바닥에서 한 장면을 끄집어 올렸다. ‘대도’란 별명의 상습 절도범이 있었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작은 눈이 유리 조각같이 빛이 났다. 그를 변호할 때였다.
“참회하고 다시는 도둑질을 안 한다고 해야 할텐데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그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는 꼬마 때부터 거지였어요. 깡통 들고 밥 얻어먹다가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은수저를 훔쳤어요. 그렇게 하면 사흘은 구걸 안 해도 먹고 살아요.”
내가 어릴 적 집으로 온 아이 거지의 깡통이 떠올랐다. 노란 바닥에 얼음이 서걱대는 신 김치 한 조각과 꽁꽁 얼어붙은 밥 한덩이가 있었다.
“다음은 마루를 넘어 안방으로 들어가 제니스 라디오를 훔치면 한 달을 먹고 살았어요. 거지 아이들끼리 누가 더 담력 있게 비싼 걸 훔쳐왔는지가 자랑이었고 나는 큰 도둑이 되는 게 희망이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그만 해야 하잖아요?”
그가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프로의 세계에는 은퇴가 없어요.”
“그러면 변호사인 난 어떻게 하라고?”
그가 씩 웃었다. 재판이 열렸다.
“변론하시죠”
재판장이 명령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고인은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체력상 더 이상 절도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세상이 그의 처참한 인생을 동정하고 있습니다. 참회하는 피고인에게 법의 온정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가 다시 도둑질을 할 것 같았다.
‘이 회칠한 무덤아. 위선자야, 독사의 자식아’
그분의 욕이 귀에 따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