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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크루즈’에 오른 사연들 엄상익(변호사)  |  2019-05-19
배는 푸른빛으로 누워있는 에게해의 새벽을 통과하고 있었다. 바다 아득한 저쪽에는 안개로 둘러싸인 섬들이 보였다. 한 달간의 나의 항해가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세계의 바다를 몇 조각으로 나누어 돌아다녔다. 환경단체에서 가는 배를 얻어 타고 속초에서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평택에서 사우디로 가는 LNG선 스플렌더호를 얻어 타고 동지나해와 대만 필리핀 바다를 지나 싱가포르까지 갔었다. 컨테이너선을 타고 울산에서 네덜란드로 갈 계획을 잡았다가 사정상 그만 두었다. 대신 영국 웰링턴에서 퀸 메리호를 타고 노르웨이해를 돌았고 밴쿠버에서 노르지안썬이라는 배를 타고 알래스카해를 돌았다. 남아메리카를 돌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태평양으로 나가 하와이와 타히티 섬을 지나 뉴질랜드까지 가기도 했다.
  
  이번에는 싱가포르 항구에서 출발해 인도양과 홍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 지금은 에게해 위에 있다. 대충 세계의 바다를 한 바퀴 돈 것 같다. 이제 북극항로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탄 루미나스호는 넉 달이 넘는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이탈리아 선적의 크루즈선이다. 2000명 가량의 외국인들 사이에 20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타고 있었다.
  
  세계 일주를 하는 크루즈선이라고 하면 부자들만 타는 호화로운 유람선으로 상상하지만 막상 타보면 그렇지도 않다. 육지의 중급 양로원 정도를 바다 위에 띄운 정도라고나 할까. 나는 세계일주 크루즈선에 탄 한국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유심히 보았다. 여행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평생을 독신으로 동네 주민센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을 하고 세계일주를 하는 배에 오른 육십대 중반의 여인이 있었다. 그 얼굴에는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를 넘어온 흔적이 역연(歷然)했다. 아내가 잡아주는 휠체어 위에서 먼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는 칠십대의 남자가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는 사람을 끄는 독특한 우수와 고독이 느껴졌다. 모두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근 듯 말을 하지 않았다. 또다른 칠십대 말쯤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성격이 활달한 것 같았다. 밤늦게 우연히 선내 식당에서 잠시 얘기를 나눌 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꿈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요. 제 친구 남편이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놨는데 건강염려증이라고 할 정도로 끔찍하게 몸을 위하는 분이었어요. 혈압이 조금만 높아져도 국내에서 제일 좋다는 삼성의료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죠. 보약도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했어요. 항상 건강했죠.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이 분이 죽는 꿈을 꾼 거에요. 그 며칠 후 그분이 골프약속이 있는데 그날따라 나가기 싫어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다 이미 잡힌 약속이니까 할 수 없이 골프장으로 갔던 거죠. 골프를 마치고 그 분이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가보니까 죽어서 탕에 둥둥 떠 있더래요. 그 분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건강보조식품이 얼마나 많은지 가게를 해도 될 정도였어요. 인생이라는 게 아무리 건강을 살펴도 갈 때는 가게 되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우리 부부도 결심을 하고 세계 일주 크루즈 여행을 떠났죠.”
  
  나는 그녀의 말을 방해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
  
  “저는 결혼하고 오십 년 동안 그냥 평범하게 주부로 살았어요. 봉사한 적도 없고 좋은 일을 한 적도 없어요. 그러다가 의과대학의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어요. 낡은 몸뚱이지만 세상에 그것밖에 내놓을 게 없더라구요. 이번에 세계일주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건 살던 아파트가 팔렸기 때문이에요. 늙은 사람이 굳이 서울에 살 필요가 뭐 있어요. 이제는 언제 어디서 저승으로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한평생 수고하며 살다가 한 번쯤 세계 일주를 하는 배를 타 보고 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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