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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와 흙수저의 역전 엄상익(변호사)  |  2020-09-15
변호사를 해오면서 마치 동물원 우리에 있는 짐승을 보듯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 부자의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부두노동자로 시작해서 청계천 판자집에 살면서 먹지 않고 입지 않고 근검한 절약으로 부자가 됐다. 하루는 집안 마당의 수채 구멍 속으로 노란 동전 하나가 굴러 들어갔다. 그걸 알게 된 아버지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삽으로 흙을 떠올려 그 구멍 속에서 기어이 동전을 찾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돈이 귀한 걸 알고 살라고 했다. 몸으로 교훈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외아들은 자라면서 전혀 다른 탕자(蕩子)의 길로 갔다. 아버지의 돈을 몰래 빼돌려 카지노를 드나들었다. 아들 본인의 말로는 국내 도박장에서 쓴 돈만 해도 백억이 넘는다고 했다. 돈이 궁한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노렸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가장 겁을 내는 존재는 아들이었다. 아들이 언제 칼을 들고 올지 모른다며 아버지는 한 섬으로 몸을 피했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개스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 재단을 만들어 막대한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의 아들은 친구들에게 돌아다니며 돈을 꾸었다. 그리고 갚지 않았다. 그에게 사기를 당한 친구들이 나쁜 놈이라고 하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를 보면서 몸은 있지만 이미 영혼은 죽어버린 존재 같았다. 변호사는 그런 인간 모습을 한 동물을 구경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강남의 큰 빌딩을 물려받은 어떤 아들은 그 건물 땅의 일부를 엄마가 소유한다고 화가 나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찾아가 불을 지르기도 했다. 물론 착한 부자도 있지만 변호사의 법률사무소에서는 그런 망나니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겉으로는 부자다. 평안하고 즐겁다고 하지만 가장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인 것 같았다.
  
  그와는 달리 우연히 나의 사무실을 찾아와 삼십 년 동안 친구같이 지내는 고등학교 후배가 있다. 들리는 소리로는 경비원의 아들로 힘들게 자라났다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으로 독재에 반대하다가 몇 년간 징역을 살았다. 그는 감옥 안에서 공부하면서 교도관들에게 영어와 일어를 가르쳤다. 그는 석방되고 나서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외신기자로도 활동했다. 세상에 대한 증오가 있을 것 같은데도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권의 고정관념과 편견 그리고 미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를 보면서 현실에 복종하면서 길들여지고 양지를 걸어온 내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가 새로 창설된 신문사의 기자로 취직이 됐다. 그는 항상 기사의 리드문을 어떻게 쓸 건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그와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어느 해 추석 무렵 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그가 혼자 앉아 있었다. 한쪽 신장이 완전히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시력이 떨어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성경 속 욥같이 나락에 빠져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하나님은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위로해 줄 말이 없었다. 다시 그를 찾아가려고 해도 가슴이 막혀서 가기가 싫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신문에서 그가 주필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마음속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어느 날 내가 쓴 한 컬럼을 보고 후배인 그가 연락했다. 점심 무렵 그의 신문사 근처의 국밥집 탁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앞도 안 보이고 하루 종일 늘어져 있었는데 동생이 신장 하나를 주는 바람에 다시 살아났어요.”
  
  그가 싱긋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가난, 병, 감옥 같은 고통에 젖어있던 그에게 고통은 고통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방대한 양의 지식이 들어 있었다. 한 시간만 얘기해도 나는 국제정세부터 시작해서 수십 시간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지혜로 바뀐 그가 겪어온 환난들이 가득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그는 신문사를 나와 노인이 된 우리 들은 이따금씩 만나 밥을 함께 먹는다.
  
  토인비는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고통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했다. 고통을 빼놓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길을 영원히 잊어버린다고 했다. 맹자는 사람은 근심걱정에서 진리 정신이 살고 평안하고 즐거운 데서 진리 정신이 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맹자는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고 할 때 반드시 하늘은 먼저 그 맘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그 살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 몸을 굶주리게 한다’고 했다.
  
  후배인 그를 보면서 현자(賢者)들의 말이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 이중건 2020-09-17 오후 9:53:00
    그래서 성경에 고난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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