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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예형 아닌 관우나 장비” 塵人 조은산  |  2020-10-15
이천이십년에 들어, 배를 잡고 뒹굴며 웃어댄 게 손에 꼽는다.
  
  나는 그저 생계에 굴복해 너절하다 뿐인 필부인지라
  그 많은 세상 속 요깃거리와 요절복통 티브이 속 입담꾼들의
  속사포에도 꽤 꿋꿋하게 근엄함을 유지하는 건조한 부류 중
  하나인데,
  
  다름 아닌 ‘정치’가 나의 배꼽을 자극했다는 것은 유머를 넘어선,
  그야말로 관념과 형상으로 말미암아 폭소를 자아내는
  오리지날 퓨어 개그의 극치를, 누군가가 내게 선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천이십년 가을, 김소연 당협위원장의 추석맞이 플랜카드가
  가장 먼저 나의 배꼽을 괴롭혔다. ‘달님은 영창으로’라는 문구보다 나는 연못 속 처절하게 오붓한 가붕개들의 적절한 묘사에 집중했고 곧 배를 잡고 뒹굴었는데 그 와중에 나는 꽤 세심하게 그려진 가재의 집게 발가락에 집중했다. 그것은 시각으로 던져지는
  프로파간다이자 몰락한 어느 정치인에 대한 확인 사살이었다.
  
  (前이 될 뻔했으나 現으로 남은) 김소연 당협위원장에게
  다만 아쉬운 것은 중도층을 배려하지 못한 문구와
  화제가 된 이후의 대응이었는데, 언론 보도가 나간 이후의
  나라면 조용히 한마디 던지고 게시글을 내리지 않았을까 싶다.
  
  “더러운 잠 (나신의 창녀를 그린 근세기 화가의 작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합성해 만들었다. 세부적 내용은 표창원
  전 의원에게 문의함이 옳다.) 을 보고 나니 표현의 자유가
  온 우주와 같이 크게 느껴졌다. 한 여인이 전라의 창녀로
  묘사되는 세상에 한 남자를 감옥에 보내는 게 그리 큰 잘못인지
  몰랐다. 물의를 일으켰다 하니 내리겠다. 유감을 표한다.”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꽤 괜찮은 모양새이지 않았나 싶다.
  (수많은 것들이 그대를 향해 달려갔고 그대로부터 달아났다.
  이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모쪼록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다.
  이유 있는 자들이 살아남는 법, 남은 날들을 통해 그것을 증명했으면 한다.)
  
  그리고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박진영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논객 진중권을 삼국지의 ‘예형’에 빗대어 비난했는데 이 기사를
  접하고서 나는 비로소 배꼽이 아닌 창자를 쏟아내고 말았다.
  
  압축해 표현하자면 예형이라는 인물은 앞 뒤 안 가리는 독설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삼국지 상에 결코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 인물 중 하나인데, 졸지에 논객 진중권은
  후한 말의 선비로 재탄생해 강하 태수에 의해 목이 달아나는
  불귀의 객으로 전도되었고 어느 여당 의원의 ‘똘마니’ 소송으로
  인해 피고인 신분이 된 그는 결국 객사한 독설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깔깔대며 웃느라 한 동안 꺾인 몸을
  곧게 피질 못했는데, 그것은 폭군 조조의 휘하에서 알몸으로
  북을 두드리는 예형의 처절함이 그의 현실과 진배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래옷을 벗어 던지며 두구 두구, 그대는 조국의 똘마니인가.
  저고리를 벗어 던지며 두구 두구, 그것은 너희들의 세상 아니던가.
  속옷을 벗어 던지며 두구 두구, 이 무슨 추안무치인가.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상해보라.
  알몸의 논객 진중권이 폭군의 진영 한가운데
  나신으로 북을 두드리며 덩실 덩실 춤사위를 벌이는 모습을.
  
  나는 말로 말미암아 말로 이어지는 정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나 또한 천한 글귀로 혹세무민에 나선 까닭은
  혹세무민에 휘둘리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들 앞에 저러한 부대변인이라는 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진영이라 하였는가.
  그의 논평이 벼린 듯 날카롭고 달군 듯 뜨겁다.
  문체가 시원하니 보기 좋고 잔재주가 없어 가볍다.
  그러나 그는 감춰야 할 것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거대 여당의
  오만과 독선이 풍기는 날 선 감정의 비린내이고 역겨움이다.
  
  다시 일합을 겨누고자 한다. 꽤 괜찮은 상대를 마주한
  나의 필봉은 유례없이 숙연하고 어느 시인과의 일전이 떠올라
  심장이 펄떡댄다. 멸하고자 함이 아닌 논하고자 함이니
  다가서는 것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진영 부대변인님 계십니까.
  塵人 조은산이 몇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먼저 그대의 촌철살인의 비유에 소직은 아직도 배가 아파 죽겠는데 이러한 큰 웃음을 주셨으니 그 은혜에 감복할 따름이라, 저 또한 몇 가지 비유를 통해 감히 그 웃음을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대는 논객 진중권을 예형 따위의 인물에
  비유했으나 가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감히 그를 평하건데, 장판교의 늙은 장익덕이나
  하비성의 안경 쓴 관운장은 과연 어떻겠습니까.
  
  코에 두꺼운 안경을 걸친 중년의 논객이
  가뜩이나 송사에 휘말려 장팔사모나 청룡언월도 따위를
  들어낼 기력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안산문화재단의 대표이사와 감성의 헌법학자 그리고
  촛불 가수들과 청산가리 여배우와 같은 오호대장군들이
  지금의 야당에는 전무할 뿐이고 또한 개콘과 같은 마당놀이도
  사라진 판국이니 177석의 거대 여당에 맞서 세 치 혀와 글월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그를 예형 따위가 아닌
  관우, 장비에 비유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게 그리도 꼴 보기 싫다면 차라리 그대의 논평과 거대 여당의 힘으로 개콘을 부활시키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개그맨이 되어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으로만 1년 치 시청률을 보장하겠습니다.
  
  또한 그대에게는 삼국지의 어떤 인물이 어울리겠습니까.
  여기 마찬가지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대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 과연 누구일까 고심하다
  겨우 추려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조조를 거친 예형을 예로 들었으니 조조 휘하에 있었던
  연의의 신하들을 열거해보겠습니다.
  
  여기 여백사의 진궁이 있고 계륵의 양수가 있고
  빈 밥그릇의 순욱이 있습니다.
  
  셋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그대와 같이 학식과 지혜를 갖춘
  당대의 모사였다는 것, 그리고 또 한가지는 부디
  내게 답변이 닿기 전 그대가 먼저 깨달았으면 하는 바,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타인의 끝을 논하기 앞서
  자신의 끝을 내다볼 줄 아는 지성인의 성찰이 남긴 의문이며
  새겨 들으셨으면 하는 저의 바람이 남긴 여백일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실로 팍팍하다 못해 가루가 날릴 지경입니다.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으니 이러한 어울림도
  꽤 괜찮은 방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언급한
  품격이라는 것의 범주 안에 제가 포함된다면,
  이러한 나의 글에 답을 주셔도 무방하다 보입니다.
  
  어떻습니까.
  한 번 골라내 보시겠습니까.
  
  이천이십년 시월
  
  塵人 조은산이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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