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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머
조갑제 병장은 왜 헌병 하사를 팰 수밖에 없었던가? 趙甲濟  |  2024-04-20
나의 스승은 軍大
  
  
   趙甲濟(조갑제닷컴/TV 대표)
  
   나는 1967년 3월1일 공군 사병으로 대전의 훈련소에 161기로 입교, 두 달 예정의 신병훈련을 받던 중 폐렴을 동반한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40일간 입원한 뒤 다시 훈련소로 돌아가 수료할 때는 163기였다. 정체성의 혼란이 생겼다. 계급보다는 기수(期數)로 서열을 따지는 전통이 강했던 공군인데 나는 162기보다 입교가 빨랐다. 따라서 군번도 빠른데 기수로선 후배였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넉 달간 관제병 교육을 받는데 내무반에선 수시로 부하를 혼내기 위한 집합이 있었다. 162기가 "163기 이하 집합"이라고 하면 나는 어디에 서야 하나? 바보처럼 물어볼 수가 없으니 기준은 내가 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군대는 기수가 아니라 군번이다."
  
   이런 나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팩트가 있었다. 제대는 기수(期數) 순이 아니라 군번 순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163기(期)지만 군번은 입대할 때 받으므로 제대는 162기보다 먼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62기가 집합시킬 때 나는 불참했다. "내가 군번이 앞서는데 부하처럼 줄을 서서 얻어맞을 순 없다"고 맞서니 아니꼽지만 어쩌겠는가? 하사관들도 나의 논리를 뒷받침해 주었다.
  
   통신학교 교육을 받은 뒤 요격관제 특기병이 된 나는 동해안의 1219m 산꼭대기 레이다 사이트에 배속되었다. 여기선 아예 161기 행세를 했다. 먼저 와 있던 동기생들이 많아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보다 먼저 이 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162기는 졸지에 한 달 뒤에 들어온 나를 상사로 대우해주어야 했다. 육사 8기처럼 역시 동기생은 많아야 하는 것이다. 1968년 1·21 사태로 군 복무 기간이 3년에다가 4개월이 연장되어 인생 항로에 변동이 생겼다.
  
   1970년 봄 제대(除隊) 말년, 후배들의 전입(轉入)이 줄어 고참 병장인 나도 보초를 서야 했다. 7, 8명의 사병들이 헌병대에 모여 초소를 배정받는데 한 명이 늦게 나타났다. 헌병대 하사가 화를 내더니 옆줄로 서 있는 우리를 향해 "눈 감앗!"하고는 주먹으로 뺨을 한 대씩 때리기 시작했다(일명 ‘아구창 돌리기’). 나는 맨 오른쪽에 서 있었는데 왼쪽으로부터 ‘퍽’ ‘퍽’ 터지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덩치가 큰 그 하사는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지만 162기 병장이었다. ‘그냥 한 대 맞아 줄까?’라는 생각도 잠시 그가 내 앞에 섰다.
  
   "나는 맞을 수 없어. 내가 기수도 군번도 빠른데 후배한테 얻어맞으면 되겠어."
  
   "뭐야, 이 새끼."
  
   그의 주먹보다 내 주먹이 먼저였다(나는 대학교 때 권투 클럽 활동을 했고, 기자 초년병 시절에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란 책을 번역한 적도 있다). 내 주먹에 턱을 강타당한 그는 뒤로 나자빠졌다. 초병들이 착탄한 카빈을 어깨에 맨 상태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헌병대장이 뛰어나와 조갑제 병장을 현장 체포, 신문실로 끌고 갔다.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여기서도 ‘군대는 군번이다’는 점을 강조했다.
  
   "군인이 부하한테 얻어 맞아서야 되겠습니까. 그것도 헌병 병장이 하사를 사칭, 선배 병장을 때리는데 맞고 있으면 됩니까. 정당방위입니다."
  
   사람 좋은 헌병대장은 조서를 쓰다가 말고 가만 있더니 "알았어. 가 봐"라고 했다. 헌병대 시설에서 헌병을 구타한 행위를 법으로 걸면 실형(實刑)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보초를 선 뒤 내무반으로 돌아와 하사관들에게 ‘사고 보고’를 했다. 평소 헌병들의 횡포에 불만이 많았던지 "잘했다"는 반응이었다. 부대의 여론이 "가라 헌병 하사 때린 조갑제 병장" 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1970년 6월30일 건강한 몸과 정신 상태에서 제대할 수가 있었다.
  
   이 부대에서 나는 미군과 함께 근무하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혔고(플로팅 보드에 항적을 그리는 일을 하다가 글자를 거꾸로 쓰는, 별로 돈이 안 되는 기술도 함께), 자위대와 연결된 통신망을 통하여 일본어 회화 연습도 했다. 군대는 나의 스승이었다. 나에게 군대는 軍大(군대)였다. 제대 후 대학 3년으로 복귀하지 않고 바로 신문사에 들어갔으니 나의 학력은 대학 중퇴(나중에 명예졸업장은 받음)이지만 당시 재학생이 70만 명이던 ‘인생대학’에선 3년 4개월을 제대로 채웠다.
  
   2020년 4월15일 자정 무렵, 한참 총선 개표가 진행 중인데 황교안(黃敎安) 미래통합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선거 패배의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한 뒤 국민들의 시야(視野)에서 사라졌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전 공군 병원에서 퇴원, 훈련소로 복귀하던 날을 추억했다. 폐렴과 늑막염을 함께 앓아 죽다가 살아난 나는 안온한 병원을 떠나 격렬한 훈련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번에 재발하면 골로 가는데’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두 달 배운 군인정신으로 병원 생활만큼은 깨끗이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날 새벽에 일어난 조갑제 이등병은 병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환자들에게 "복귀를 명 받았습니다"라고 보고를 한 뒤 미지(未知)의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스물두 살 조갑제 이등병도 인수인계를 깔끔하게 하는데 대통령 권한 대행을 지낸 천하의 엘리트가 아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망가듯이 저게 뭐야, 하는 의구심은 적중했다. 그는 1년 반 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무대에 복귀했는데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군대라는 스승으로부터 인수인계의 중요성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제대 후 즉시 3학년으로 복귀한다"는 나의 인생설계도는 김신조 때문에 제대가 늦어져 재조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교 졸업자가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는 신문사(부산의 국제신보)에 수습기자 시험을 쳐서 1971년 2월부터 지금까지 54년째 기사를 쓰고 있다. 수습기자 교육 첫 시간에 들어온 한 편집국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 출입 기자는 시청 수위를 대하는 태도와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같아야 합니다,"
  
   둘째 시간을 맡은 김규태 문화부장(시인, 작고)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좋은 기사문은 짧고 정확하고 쉽게 써야 합니다."
  
   복문(複文)을 피하고 형용사와 부사(副詞) 사용도 최소화하여 명사와 동사 중심의 철골(鐵骨) 같은 문장을 권했다. 기자가 가졌으면 하는 인간관과 문장론에 대한 두 분의 두 마디는 살아 있는 지침이 되었고, 지금도 이렇게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두 마디를 덧붙여서.
  
   "글은 짧고 정확하고 쉽게, 그리고 빨리, 많이 써야 한다."
  
   54년 전 헌병대에서 ‘얻어맞느냐, 저항하느냐’를 고민했던 약 1분간은 나의 79년 생애에 결정적 의미를 지녔음을 그 후 알게 되었다. 부하에게 얻어맞는 편한 선택을 했다면 그 비겁함에 대한 자책(自責)이 나를 따라다녔을 것이고 ‘반골(反骨)기자 조갑제’는 없었을지 모른다.
  
삼성전자 뉴스룸
  • 북한산 2024-04-22 오전 9:28:00
    잘하셨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렇게 못했네요. gp상황병으로 근무하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대뜸하는 말이 " 나 보안대 김병장인데..."하면서 반말로 시작하는데 아, 저도 그때 나는 수색중대 이병장인데 왜?라고 반말로 받아치지를 못하고 보안대라니까 기가 죽어서 예, 예하고 통화를 한 것이 수치스럽습니다.저희 선임하사인 중사님도 보안대 하사한테 존대를 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에서 못 벗어났습니다.
  • 골든타임즈 2024-04-20 오후 9:21:00
    軍隊는 계급사회다. 군대는 上下관계가 뚜렷한 수직적인 조직이다.
  • 무학산 2024-04-20 오후 7:17:00
    존경합니다 조갑제 선생님.
    그 당시는 사원 모집 공고에 이렇게 나왔지요
    초급대학 졸업자나 4년제 대학 2년 이상 수료자.
    지금이야 너도 나도 대학에 가니까 4년제 대학 졸업자 운운하지만
    그때는 2년제 초급대학 졸업자가 지금의 대학 졸업자와 맞먹고 같은 대접을 받았습지요

    헌병을 때렸는데 그런 기백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될까요? 있기나 할까요? 더욱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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