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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굶주린 北 주민들, "저거 잡으면 몇 달 먹겠다야!" 중국 농업 전문가 "북한 농토는 이미 1970년대 말에 산성화…10년은 묵혀야 정상화될 것"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4-04-21
<1979년에 북한의 농사 땅은 이미 망해있었다.>
  
  필자는 북한 식량난은 개인농을 해야 해결된다고 주구장창 부르짖었다.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의 말이니 그대로 하면 당장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왜냐면 너무나 황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황폐화는 땅에서부터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북한 아닌 객관적인 나라 중국 전문가의 평가는 10년이었다.
  
  탈북하여 남한에 와서 대학원을 다닐 때 조선족 동창이 있었다. 동창의 부친은 연변 농업과학연구소 출신이다. 이 분의 증언이기에 정보가 너무 가까운 인연에서 나온 것이다.(동창과 부인은 14억 중국에서 수재급이나 가는 무한대학과 북경대 출신이다.)
  
  동창 부친은 1992년경 북한 회령군에 친척을 방문하러 갔다. 대량 아사 징조에 이른 북한의 친척이 다급한 도움 요청으로 간 것이다.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안다고 했지만 실제 가보니 상상을 초월하였다. 북한은 말 그대로 황량한 사막이다. 풍짝대는 중국 거리와 기름진 중국 사람들 속에 있다가 북한 거리에 와 보니 한산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한다. 그 속에는 마치 좀비 같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자신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이방인들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을 다녀온 이웃은 다시는 북한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유난히 뚱뚱한 자기를 보고 <저거 잡으면 몇 달 먹겠다야!> 이런 소리를 가는 데마다 들었는데 밝은 대낮이라도 등골이 오싹했다. 실제로 식인 소문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두만강 하나 사이 두고 천지 차이를 확 느낀 동창 부친은 친척집에 가기보다 북한 농사 땅부터 본다. 농업연구소 출신다운 직업 본능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남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북한 땅들을 돌아보고 파 보니 산성화될 대로 되었고 토양분이 마를대로 말라있었다. 이렇게까지 황폐화될 수 없는데 이는 마치 하늘의 저주를 받은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이분은 비신앙인으로서 저주받은 땅이라고 했는데 경전에도 저주를 받아 땅은 놋쇠 즉 황폐화된다고 했다.)
  
  <슈퍼 옥수수>로 3년 만에 북한 식량난을 해결하고 남아 남한까지 가져온다고 장담했던 김순권 옥수수 박사도 최종 결론은 저주받은 땅으로서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했다.
  
  동창 부친은 그 어렵다고 한 중국의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때보다 북한이 더 심각하게 굶주리고 있었다고 했다. 사천성 같은 평야에서는 수천만 명이 아사되기도 했다지만 연변은 중국 변방이고 산야지로서 북한처럼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동창 부친은 북한에서 보는 것마다 가슴이 아파 다시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가슴 아픈 충격으로 중풍을 얻은 분이 있다. 탈북 노정 처음 만났던 선교사 유영길 목사이다. 미국 시민권자로서 1997년 구제 물자 들고 북한에 들어갔는데 참상 중에서도 어린이들 몰골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가장 풍요한 미국에서 갔으니 그 충격이 더 컸던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동창 부친을 대신하여 이번에는 동창 엄마가 북한에 방문 간다. 동창 엄마의 언니가 북한 회령에 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니는 중국 친척의 도움으로 생활 형편이 나은 축이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부엌에서 돼지를 키우는데 냄새가 덜한 염소를 키우고 있었다. 짐승을 부엌에서 키우는 것은 도둑이 너무 무성하기 때문이다.
  
  동창 엄마가 잠에 들었는데 가슴을 파고드는 뭔가 느꼈다. 북한 집은 단 칸이 주로 여서 남 여가 함께 자게 되는데 웬 치한이 젖가슴을 만지려고 하는가 해서 꽉 잡았다. 급하게 불을 켜고 보니 치한이 아니라 개구리였다. 부엌에서 염소를 키울 정도이니 집안에 별 생물이 함께 사는 것이다. 너무 놀라 집밖에 던지려는데 북한 언니가 손을 꽉 잡아 뺏으며
  <이거(개구리) 낼 아침 끓여 먹어야 한다.> 이 소리에 이불 쓴 속에서 밤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번에는 사위가 북한 친척을 도우려 회령을 또 방문한다. 저녁에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풍성한 중국 음식과 술도 대접했다. 그런데 취기가 오른 한 사람이 굉장히 뚱뚱한 사위를 슬슬 어루만지면서 <야! 중국에 그냥 보내긴 아깝다!>. 취중 농담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을 놓고 짐승 잡아먹는 식 농담에 사위는 그날 밤 한 잠도 못 자고 날을 샜다. 날이 밝자 제일 먼저 세관에 가서 중국에 왔고 다시는 그런 끔찍한 곳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 농사 땅의 황폐화 주 요인 산성화는 1979년에 완공되었다. 이를 왜 정확히 알게 되었나면 필자가 남포농업대학에 있을 때 김일성의 교시를 직접 접했기 때문이다. 농업대학 학생들을 총동원하여 조사한 결과 전국의 농사 땅이 산성화되었다고 김일성 교시로 시인한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생석회를 뿌리고 생흙갈이를 하라고 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실현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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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970년대에 벌써 전국 농사 땅이 산성화되었을까. 이는 1970년대에 화학비료를 가장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1970년 초 남한의 녹색 혁명 <통일 벼>를 통해 식량문제 해결함에 자극되어 김일성도 농업의 최고 사령관을 자처하며 <주체농법>을 적용하였다. 주체 농법은 집약화 농법으로서 화학비료를 많이 쓰게 된다. 이로 인해 농산량은 올라간 대신 땅의 산성화를 완성시킨 것이다.
  
  이 산성화는 1980년대에 회복불능 상태에 이른다. 산성화를 중화시키는 석회비료, 유기질 비료가 없는 것이다. 유기질 비료의 원천인 축산업이 붕괴되었고 또 난방용으로 곡짚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 먹을 식량마저 부족한 형편에 짐승 먹일 사료가 없으니 자동으로 축산업이 붕괴된 것이다. 한편 난방용으로 곡집마저 불태워져 유기질 비료는 완전 차단된 것이다. 인분 모집 운동을 장려하지만 위생만 나빠지고 토양 개량은 어림도 없다. 중국 농업과학연구소 출신인 동창 부친이 보건대 10년 묵혀야 정상 땅으로 될 정도로 완전 황폐화된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개인농을 실시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다. 개방까지 같이해야 성공할 수 있다. 개방되면 남한에 차고 넘쳐 처리 곤란한 축산 분뇨를 보낼 수 있다. 사실 북한 식량난은 남한에서 남아도는 쌀로 당장 해결할 수 있다. 한편 남한처럼 농업이 아니라 무역 우선주의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다.
  
  하지만 3대 세습 북한 정권은 개방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로 우상화한 3대 세습 권력은 폐쇄 속에서만 유지되는 본성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3대 세습 정권이 없어져야 북한은 개방되고 식량난, 북핵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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