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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잡은 선진국 문고리 삐끗하면 다시 닫혀” <秘話>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생각하는 88서울올림픽과 全斗煥의 순정 (4) 趙甲濟  |  2024-07-19

 

“감정이 북받쳐서 순순히 내놓을 기분이 아닐 때도 있었어요”

 

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1월 7일 저녁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송별만찬을 가졌다. 인간적인 토로 속에서 또 올림픽 이야기가 나온다. 한 기자가 “집권 연장의 유혹을 느낀 적은 없으신지요”라고 물었다.

 

“내가 유혹을 느꼈다기보다 유혹한 사람들이 내외국인 중에 많았어요. 내가 85년에 미국에 갔었는데 민주당 상원의원 한 사람이 한국이 유치한 올림픽이 얼마나 중요한 거냐,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계속해야 되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IOC 조직위에서는 수차, 대통령을 보고 서울올림픽을 결정했는데 바뀌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어요. 국내에서도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한 임기 더 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 노골적으로 얘기한 전직 국회의원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나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느냐, 나보다 훌륭한 분이 줄을 서 있다. 우리 국민은 우수하기 때문에 누가 후임 대통령이 되든 훌륭한 지도자로 양성해줄 거고 어려울 때 단합하는 힘이 있으니 절대 걱정 말라고 했어요. 작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이래서 정권을 이양할 수 없었겠구나, 이해가 갔어요. 내가 정권을 내놓는다고 하면 내가 잘못이 있더라도 덮어주고 보호해주려고 해야 하는데 내놓는다니까 까뒤집고 해요. 박건석(朴健碩)인가 하는 사람이 떨어져 죽은 사고가 있었는데 내가 그 사람 꼴도 잘 몰라요. 그런데 정부가 그 사람 돈을 먹었다고 공격하고.

 

사사건건 그런 식으로 물고 늘어지면 정치가 안 되고 투쟁이 돼요. 권투 선수를 뽑아서 권투를 하는 게 낫지. 사람이 감정의 동물입니다. 나가는 사람, 가만있는 사람 약을 올리면 이성을 잃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맞아 죽는 게 창피 안 당하고 더 행복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감정이 북받쳐서 순순히 내놓을 기분이 아닐 때도 있었어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어요.”

 

 

“겨우 잡은 선진국 문고리 삐끗하면 다시 닫혀”

 

다른 기자가 “재임 7년간 남기고 싶었던 게 뭐냐고 한다면 선진국의 문고리를 잡게 된 것이라고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문고리는 열어놓았는데 이게 잘못하면 닫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국민이 조금만 합심하면 선진국이라고 하는 안방을 차지하게 돼요. 그래서 앞으로 4~5년이 정말 중요해요. 소련과 중공을 자유스럽게 여행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올 것이고 이북과도 동·서독 정도로 교류가 트일 것으로 나는 봐요. 나는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실감했어요. 똑똑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비판도 많고 말도 많아요. 둔한 사람들이 많으면 통치하기는 쉽겠지만 발전은 없어요.”

 

또 다른 기자가 “대통령으로서의 경험을 후임 정부와 협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이라고 물었다.

 

“후임자는 나와 친한 사이니까 고통 스럽고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면 자문을 해달라든지 요청이 있지 않겠나 봐요. 그러면 내가 그분을 위해 다소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친하다고 해서 요청도 없는데 나서면 상호 불편해져요. 부자지간에도 자기 철학과 원칙에 따라서 하는 거니까.”

 

김성익 통치사료 비서관은 이런 메모를 남겼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 무렵 송별모임에서 자신의 심경을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한 데서 나오는 착잡한 느낌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후임자 측의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청와대 분위기는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전 대통령 역시 뭔가 섭섭한 느낌을 털어놓을 때가 있었으며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1월 14일 언론사 편집국장들과 가진 오찬 석상에서 “어떤 수모라도 참고 견디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대통령을 내놓을 수가 없다” “노태우가 모든 것을 잘 봐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섭섭한 꼴을 따지면 대통령 못 내놓아요. 요다음 사람이 잘해주면 대통령을 임기 동안 끝마친 전임 대통령이 한 사람 있다 하는 것으로 내외적으로 민주주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겠느냐 봐요.”

 

 

레이건 대통령의 善意

 

이 무렵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선의를 가지고 신경을 써주고 있었던 이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었다.

 

《레이건 일기》의 567페이지에는 1988년 1월 14일 목요일에 쓴 내용이 실려 있다.

 

〈백악관 안보회의를 열었다. 한국의 스파이 이야기가 보고되었다. 바레인에서 잡힌 24세의 여성은 대한항공 폭파 용의자인데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며 올해 열리는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했다고 한다.〉

 

이 일기는 당일 안기부의 김현희 수사보고를 인용한 것이다. 미국이 서울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소련을 통하여 북한 정권에 압력을 넣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레이건 대통령, 슐츠 국무장관, 칼루치 국방장관까지 나서서 소련을 움직였다. 이런 사실은 1988년 6월 8일 청와대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프랭크 칼루치 미 국방장관의 설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칼루치 장관은 크라우 합참의장 등을 대동했다. 그는 그 직전에 있었던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회담에 대해서 보고하면서 서울올림픽의 안전 문제에 대해 거론했음을 밝혔다.

 

〈북한 문제와 올림픽 안전에 관해서는 수차 소련 측에 의견을 개진하였는 바, 셰바르드나제 외상은 오찬 시 레이건 대통령께 북한은 도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에 대하여 미국 측에서는 그렇다면 다행한 일이나, 분명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슐츠 장관은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소련 측에 북한이 최근 SA-5 미사일을 전방배치 한 것을 지적한 바 있고, 본인도 만찬석상에서 옆에 앉은 그로미코 의장(과거 25년간 외상을 지냄)에게 촉구하였던 바, “그는 북한에 알아본 바, 올림픽을 방해할 하등의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고 하였으며, 본인이 한국 측에 그렇게 전달해도 되겠냐고 문의한 데 대해서 좋다고 확답을 하였습니다.〉

 

 

“살아서 청와대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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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2월 25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손자를 안고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사진=조선DB


1988년 2월 8일 대통령은 청와대 식당에서 이념교육 유공 교수들을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친구지만 노태우도 인간 전두환은 잘 알아도 대통령 전두환은 이해 못 합니다. 그동안 나한테 와서 자기 얘기하고 내 얘기만 듣고 갔지 대통령의 고충을 알 길이 없어요. 앉아보면 ‘권위주의 청산’ ‘보통 사람’ 며칠 후에 없어질 겁니다. 인기만 끌다가는 1~2년 안에 나라 망칩니다.

 

나는 2월 24일까지 가차 없이 할 겁니다. 사람이 인기 먹고 삽니까. 지금 권위주의 배격 운운하는데 여러분이 전공하는 분야에서는 권위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면 해요. 교육계에 대가(大家)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옆의 사람 좋은 말하면 깎고 서로 치고받다 보니 대가라는 이름 듣는 사람이 없어요. 대가가 아니라도 추대해서 만들어야 됩니다. 군사독재라고 떠들어도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게 된 건 틀림없지 않습니까. 더 이상 정통성의 시비가 있을 수 없게 되었으니 여러분이 교육을 하는 데에도 명분이 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2월 19일 자신의 재임 중에 청와대를 출입한 언론인들과 청와대 출입기자단을 점심에 초대한 자리에서 “청와대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흉가입니다”라고 했다.

 

“보통 집으로 말하면 재수 없는 집이지. 이기붕 일가가 몰살하고 이승만 박사 쫓겨나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와서 육 여사가 시해되고 박 대통령이 또 시해되었어요. 여기 와서 대통령으로 일한 사람치고 제대로 살아나간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개인 집으로 치면 이런 흉가가 없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이런 느낌을 몰라요. 단임을 아무리 떠들어도 내가 버마에서 죽었다고 해봐요. 내가 살아야 단임이라는 것을 사실로서 입증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지금은 죽어도 괜찮아요. 후임 대통령이 있으니. 내가 죽으면 정말 청와대가 흉가가 돼요. 그래서 내가 내 손주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해요. 총독부 이래 여기서 죽어만 나갔지 태어난 일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새 생명도 탄생한다는 사실로서 청와대를 바꾸어놓은 겁니다.”

 

 

올림픽 개회식 불참

 

올림픽 개회식을 일주일 앞둔 1988년 9월 10일 박세직 조직위원장이 초청장을 가지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찾았다. 전두환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참관하느냐 않느냐로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개회식 참석 요청을 정중히 사양한다.”

 

박 위원장은 붉어진 눈시울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바쁜 일이 많을 텐데 어서 가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서 TV를 통해서 개회식 광경을 지켜봤다. 단상 로열박스에는 노태우 대통령은 물론 서울올림픽을 히틀러의 베를린올림픽에 빗대며 빈정거렸던 김영삼씨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북한의 테러가 있을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행사가 무사히 끝나서 기뻤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찾아와서 감사를 표했다. 서울올림픽은 참가국 수와 선수단 규모에서 가장 큰 대회였고 가장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치하도 했다. 16일간의 대회가 끝나자 검찰 중수부도 5공 비리 의혹 가운데 내사를 끝낸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 착수했다.〉(회고록)

 

서울올림픽에 순정을 바치고 이제 힘없는 한 시민으로 돌아온 전두환은 11월 23일 백담사로 떠났다. 6·25로 폐허가 된 나라가 한 세대 만에 세계 앞에서 만들어 보여준 화려한 가을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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