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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머
선거에서 당선과 낙선의 거리는 천국(天國)과 지옥(地獄)만큼 멀다. 한 시의원의 이야기 浩然의生覺 (회원)  |  2024-07-18
선거에서 당선과 낙선의 거리는 천국(天國)과 지옥(地獄)만큼 멀다.
  
  김 사장은 조기 축구회 회장이며 산악회 회장이기도 하다. 사업은 광고업을 한다.
  
  매년 선거철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나왔으니 아는 사람도 많다. 가끔 친구들이 펌프질도 한다.
  
  지난번 나와 낙선했지만, 이번에는 산악회나 조기 축구회에서 적극 밀어주기로 한다. 아내는 한사코 말렸지만 때가 되면 흔들리는 마음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사업은 제쳐두고 동네방네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명함 주며 인사하기 바쁘다. 지난번에는 건방지다 인사를 안한다는 소문이 있어 보는 사람마다 코가 닿도록 인사하며 다녔다. 목욕탕 가서는 동네 사람 등도 밀어주고 이발소와 각종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명함을 돌렸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드디어 시의원 당선이다.
  
  의회에 가니 국회의원 배지 비슷한 것을 가슴에 달아주는데 오늘부터 신분이 바뀐다? 당장 의원님 신분이다. 공무원들 대하는 태도부터 다르다. 여기저기 행사 초대가 많다. 의원님 좌석은 언제나 앞자리다. 좌석을 찾아가면 사람들이 의원님 길을 피해 준다. 보는 사람마다 의원님 의원님 하면 마눌 보기도 근사하고 기분 땡긴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 부탁도 들어온다. 괜히 으스대고 싶어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녁 귀가 시간이 자꾸 늦어진다. 그때부터 마눌의 온도 메타가 올라간다.
  
  “당신은 말이야 사업은 나 몰라라 하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이럴 겁니까?”
  
  의원님은 맨날하는 소리 의회(議會) 핑계에 어제는 경숙이 집 결혼에 오늘은 황칠이 집 초상집에 내일은 진득이 집 개업에 모래는 의회(議會)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외국 선진지 시찰에 연봉도 수당 제외하고 4.000만원 정도 되지 식당가면 돈 낼 놈들 줄 서 있지 세상에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복도에서 있는데 마이크에서 안내방송에 “회의 시작할 때 되었습니다. 의원님들 회의실로 입장하여 주십시오.” 뒤에 보니 방청객에 기자 플래시에, 이럴 줄 알고 사진빨 받으려고 빨간 넥타이하고 이발소에도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와 저녁 뉴스 보니 “어라~ 내 얼굴은 하나도 안 나왔네.”
  
  “의원님 당신은 초딩이잖아요”. “그리고 기자 생리 좀 알아보세요” “기자 땅 파놓고 합니까요”?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4년이 지났나? 선거하지 말고 이대로 8년 쭉 하는 법이라도 발의하는 넘 없나?
  
  초딩 중딩 지나다 보니 벌써 3연임(連任) 이라. 요번엔 의장 한번 해야 할낀데, 물밑 로비가 움직인다. 김의원(金議員) 보니 벌써 지 편 많은 것 같고, 최의원(崔議員)은 동내 후배라 연대가 될 거 같긴 한데, 중간에 누굴 낑가 갖고 해야지 누가 좋을까?
  
  저녁마다 오늘은 박의원(朴議員), 내일은 윤의원(尹議員) 소주로 원샷 또 투샷. “그래 정보 좀 들어 봤어?” “그냥 맨입으로는 어렵다 카든데.” “그라마 우짜마 좋노?” “맨 입에는 좀..”
  
  “그 카다 잘모 하마 국립호텔 간데이.” “에이 그걸 누가 알아요.” “너 비밀 지키레이.”
  
  “여보, 이번 의장 선거 있잖아. 이번 아니면 기회 없는데 당신이 좀 도와줘. 제발 부탁이야.”
  마눌 曰 “지난번 빚도 아직 못 갚았는데. 나 정말 몬산다 자꾸 그랄끼면 우리 이혼하자.”
  
  선거날이다. 12대 8로, 4표 차로 의장 당선이다. 그런데 글마 노의원((盧議員) 있잖아 그 친구 사람 잘못 봤다 그렇게 밀어주기로 해놓고 고무신 거꾸로 신더라 괘씸한 넘 이구나.
  
  이튿날 아침
  
  아파트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 보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의장님 모시러 왔습니다.” 비서가 깍듯하게 인사한다. 의장은 목에 깁스가 들어간다. 마나님이 아파트 5층에서 내려다보니 시장차(市長車)와 동급인 신형 제네시스에 의장 남편이 뒷자리에 타시고 등청 하신다. 멋져 보인다.
  
  첫 등청인데 의회의 10km 거리가 짧은 것만 같다. 방금 동창이 지나가면서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을 텐데 의장 차는 얼마나 썬팅을 진하게 했는지 밖에서는 안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의회 청사에 들어서는데 민주노총 데모 때문에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 하지만 의장 차임을 알고 그냥 통과시킨다. 의원 생활할 때는 5년 된 소나타라 주차장 찾기가 힘들어 3번 정도 왔다 갔다 했는데, 기사는 의회 현관 앞에 바짝 세운다. 벌써 사무국 직원이 기다리다 뒷문을 열어준다. 청사로 들어가니 김 비서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다 3층을 눌려준다.
  
  3층에 내리니 여기저기서 보내온 화환과 난들 때문에 통로가 복잡하다. 사무국 직원이 의장 방으로 안내한다. 공기 청정제를 뿌렸는지 향긋한 냄새가 난다.
  
  책상과 의자도 의원 생활할 때보다 크고 넓다 책상 위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크리넥스 휴지가 있고, 각종 필기도구가 새것으로 놓여 있고 일간 신문이 잘 정리되어 책상 왼편에 있고 컴퓨터도 새것으로 준비되어 있다.
  
  자리에 앉아본다. 푹신한 게 감촉도 좋다. 인터폰으로 비서에게 “시장 전화해 봐.” “네, 그렇지 않아도 시장님께서 축하 인사드리러 오신답니다.”
  
  “의장님 인터넷 신문 최기자 2시에 인터뷰 취재 온답니다.” 그럴 줄 알고 어제저녁 어떤 이야기 할까 준비해 놓았다.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전투의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연설한 내용을 잘 짜깁기하여, 시민의, 시민에 의한, 우리 시민을 위하여 목숨 바칠 각오로 일하겠습니다.
  
  인터뷰 취재 중 사진도 찍고 최기자 자리에서 일어선다.
  
  의원 초딩 때 기억도 있고 해서 최기자에게 봉투를 건넨다. “의장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최기자 내가 주는 것은 괜찮아. 그리고 사진은 말이야 책상에 앉아 턱을 고이고 있는 것 사용해 줘. 난 키가 작아서 서 있는 것은 짜리몽땅해서 보기 싫다 말이야.”
  
  빨리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스마트폰을 들고 사무실을 어슬렁거려 본다. 내일은 현충일 이라 비서가 내일 스케쥴을 알려준다. 연설문은 김 비서가 준비한다고 한다.
  
  행사가 아침 10시라 집에서 바로 현충원에 간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 있다. 자리는 시장 옆 자리다. 앞 좌석엔 시 의원 삐까리들이 자리를 차지했고, 막상 관계되는 국가 유공자 유족들은 뒷 자석에 않든지 자리 없는 사람은 그냥 기다린다.
  
  내 차례가 되었다 김 비서가 연설문 A4를 건넨다. 한참을 잘 읽어 가다가 바람이 불어서 그걸 따라가 잡느라 애를 먹었는데, 사람들이 속으로 많이 웃었을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점심을 위해 식당에 간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내가 오길 기다리며 시장 옆자리를 비워 놓았다. 그때 비서가 귓속말로 “의장님, 2시에 행사 있습니다.”
  
  그날 오후
  
  행사장에 도착한다. 시민들이 타고 온 차도 많아 행사 요원들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지만 내 의장차는 무대 바로 밑에 도착한다. 여러 사람들이 누군가 궁금해서 쳐다 본다. 앞 좌석의 김비서가 재빨리 내려 뒷문을 열어준다. 여러 사람이 쳐다보는 가운데 차를 내린다. 이것을 요새 말로 하차감(下車感) 이라고 하는구나.
  
  의회에도 아파트에도 화분이 천지 삐갈이라. 아파트 302호 501호 집에도 가져 가라고 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마눌님은 괜히 기분이 좋다.
  
  한편 마눌님은 이제 의장 부인 됐으니 시장 가서 콩나물값도 깎지 말고, 목욕탕 때밀이 아줌마나 미장원 원장은 열심히 운동 했으니 팁도 줘야지. 그때 학교 갔다 오는 큰딸 “엄마, 엄마 우리 아빠 의장 되었다면서요? 학교 선생님이 나한테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지금도 그 의장님은 누구를 만나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평생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의장때 말이야” “내가 의장 할 땐 말이야” 무용담을 합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하는데..
  
  벌써 선거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와~ 시의원도 이렇게 좋은데 국회의원은 얼마나 좋으랴. 좋아 이번에도 운동화 끈 단디 매고 해보는 거야.
  
  그 의장님은 마르고 닳도록 의장을 하셨는지, 그 후의 이야기는 모르겠습니다 ㅋㅋ
  
   -浩然의 妄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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