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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화는 ‘근대화 혁명’임과 동시에 ‘도착적(倒錯的) 근대화’ 김진현, <대한민국 100년 통사> 출판 기념회 서평. 7월31일 서울프레스센터. 남의영(도쿄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  2024-08-01

서평을 시작하기 앞서 김진현 선생님께서 서평자로 초대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런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은 후배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김진현 선생님은 저에게는 48년 선배님이십니다. 이 48년은 일제강점기부터 미 군정기,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그 동안 진행된 개혁과 발전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끌어 오신 분이고, 제가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대한민국의 100년을 내다보시는 분이셔서 외경심이 듭니다.

 

책 제목이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년부터 2048년까지)>입니다. 올해가 2024년이니 2048년까지는 아직 한국인들이 살지 않은 미래입니다. 더욱이 저희 세대에게 앞으로 24년은 40대부터 60대까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즉 미래를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역사에 미리 포함하셨습니다. 여기에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저는 책을 읽으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라고 하면 저희 세대가 바로 떠올리는 경구가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정치와 역사의 관계를 살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말을 인용하면서 말하는 ‘역사’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역사’일까. 저는 한국인이, 특히 저희 세대의 대다수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역사’가 진정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커졌습니다. 이런 질문도 떠올랐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실들이 아닐 텐데,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어떤 과거를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알고 싶은 과거가 아닐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알고 싶은 과거가 아닌 ‘역사’라 한다면, 그 ‘역사’란 무엇이어야 할까.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역사’를 알아야 하며 왜 알아야 할까.

 

저는 김진현 선생님의 <대한민국 100년 통사>를 읽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통사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후세에게 전하는 ‘유언’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현재에 당면한, 미래에 당면하게 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 문제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특히 중국과 같이 한국과 유사한 근대화 경로를 밟은 많은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란 앞으로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전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합니다. 한국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더불어 잘 살기 위해 달성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시며 향후 과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하셨는데, 저는 그 속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냉철한 태도를 읽어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 국민들도 선생님처럼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의 근대화가 ‘근대화 혁명’임과 동시에 ‘도착적 근대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기초과제(안전, 통일, 평화, 생명자원확보, 4강외교능력)의 기초능력도 충실히 갖추기 못한 나라인데” 경제적인 성과에 도취해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의 극적인 성취 뒤에는 극적인 과오가 있음을 한국인들이, 특히 미래 세대가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과오를 외면하고 성취를 위해 달려갈 게 아니라 과오를 직시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론도 낙관론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과거에 대해 비판하고 성찰하며 참회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오란 드러내기 부끄러운 것입니다. 한국의 성취는 자랑스럽고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고 싶지만 과오는 말하기는커녕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법입니다. 하지만 그 과오를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직시하시고 ‘도착’이라고 개념화하셨습니다. ‘도착’이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표현이 정당한 것인지 저는 잠시 의문이 들었는데, 2년 전에 출간하신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읽고 나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특히 서울시립대에서 추진하신 개혁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나서 제가 지금껏 한 번도 문제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아마 앞으로도 문제라 생각하지 않을 것을 처음으로 문제라 여기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바로 저 자신의 머릿속이 ‘도착’상태에 있음을 알게 됐고 비로소 ‘도착’이라는 표현에 담긴 뜻을 헤아리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과거에 대해 참회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한국인 대다수는 ‘도착’이라고, 아니 문제라고도 여기지 않을 것을 포착해 내시는 김진현 선생님의 예리한 시각에 경탄했습니다.

 

이러한 한국 근대화의 성공과 과오에 영향을 준 요인들에 대해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통시적, 통장적 관점에서 분석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가 앞으로 과제에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놓인 환경의 핵심을 짚어 주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의 가장 큰 토대는 해양화였으며 한국이 4대 강국에 의해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기회를 잘 잡아 도전했기에 ‘혁명’이라 할 극적인 성취를 이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인의 능력과 노력뿐만 아니라 미국인과 일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한국인이 미래의 과제에 도전할 때 명심해야 할 원칙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인구 합계가 대한민국 인구의 36배라는 점에 착안하셔서 ‘1:36의 자강론’을 펴셨습니다. 한 마디로 4대강국을 뛰어넘을 정도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무리한 목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을 4대강국에 비해 작고 약한 나라라 여기고 열등감, 피해의식, 그리고 희생자 의식을 갖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진현 선생님의 통사와 회고록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은 4대강국과 경쟁하고 도전을 계속했기에 가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진현 선생님께서는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도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인종, 언어, 종교, 국경을 넘어 누구나 잘 아는 보편적 가치에 충실할 것, 식량과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원 확보뿐만 아니라 절약과 절제에도 힘쓸 것, 그리고 대한민국 건설기 지도자들처럼 도덕적 신뢰를 구축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민족 종교를 창시해 온 경험을 살려 인류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김진현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100년 통사>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 혹은 교양의 수단이 아니라 한국인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지침으로 써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가 이 지침을 가지고 앞으로 24년 동안 더 좋은 나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특히 한국 근대화의 ‘도착’을 바로잡을 수 있을 지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이 도전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빼앗긴 나라를 찾아 새롭게 세우고, 목숨을 걸고 싸워 지켜내고, 4대강국과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부강하게 만들어야 했던 앞세대 분들의 도전보다 어렵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는 그런 앞세대 분들의 담대한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덕분에 풍요로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리게 됐습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나 한국을 찾아온 탈북자들의 가슴 아픈 증언을 생각하면 이 행운이란 얼마나 큰 것인 지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앞세대 분들께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어 주신 데 대해, 특히 김진현 선생님께는 저희 세대에게 필요한 역사까지 써 주신 데 대해 마음 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세대가 그 역사를 이어받아 대한민국 100년을 향해 책임 있게 살아가도록 저 자신부터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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