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중앙일보에 안혜리 논설위원의 <전공의 소송 강명훈·최재형 변호사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지난 6월 28일 사직 전공의 1000여명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하정'의 강명훈 변호사와 감사원장을 지낸 전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최재형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하정' 사무실에서 만났고 그 이후 추가 인터뷰를 통하여 작성한 기사라고 설명했다. 첫 문단은 지난 2월6일 이전 한국의료가 천국이었음을 보여준다.
<'병원을 찾는 환자 중 원하는 날 진료를 못 봐 대기한 비율은 0.9%, 외래 접수 후 진료까지 기다린 시간은 평균 17.9분. (수술 등을 위한) 입원 환자 절반(48.1%)은 예약 없이 당일 입원, 열에 하나(10.6%)만 원하는 날 입원 못 해 평균 13.6일 기다림. 진료·치료 만족도는 94.7%. 의사들 주장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2023 의료서비스 경험조사' 결과다.>
안 기자는 <장기이식 등 생명에 직결된 주요 수술마저 기약 없이 미뤄지고 하루가 멀다고 전국 응급실 축소 운영 소식이 들려오는 '의료대란' 와중이라 언제 이런 의료서비스를 누렸는지 아득하지만, 한국은 원래 이런 나라였다. 의사들(전공의 포함)이 1인당 연 6113회(OECD 평균 1788회) 진료하며 지탱해온 의료 시스템이었다>고 했다.
의료천국을 의료지옥으로 만든 것이 윤석열 정부란 점을 수치로 보여준 문장이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다가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의 소회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감사원장으로서 탈원전 등 정부의 失政을 감사, 불법성을 확인하고, 검찰에 넘겨, 사법적 응징을 받도록 했던 영혼 있는 공무원이었다. 진행중인 의료대란에 대한 감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재형 변호사는 먼저 정부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의원 시절 복지위 소속이라 의료 문제를 꽤 다뤘는데 지난해 11월 '의료사고 책임감면과 필수의료 확대' 세미나에선 "국내 의료인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당한 건수(연평균 754.3건)는 의료 소송 보상처리를 국가가 담당하는 영국의 580.6배로, 이런 이유 탓에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학 등 필수의료를 외면한다"는 현장 목소리를 전했다고 한다.
지난해 2월엔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게 "전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로드맵을 발표해 전공의 지원을 유도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당시 조 장관은 "불가능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 정부가 1년 반이 지나 의료대란이 불거지고나서야 지난달 30일 뒤늦게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최 변호사는, 의료사고 법적 리스크나 酬價 조정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발표에 앞서 풀었어야 할 문제들이고, 그렇게 할 기회도 있었는데 이를 건너뛰고 증원만 앞세우는 바람에 작금의 응급실 대란 등 국민 건강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 치명적 지적이다. 일머리를 몰라 일의 순서를 거꾸로 잡는 바람에 의료천국을 의료지옥으로 만든 데 대하여 대통령과 장관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일의 先後를 가리지 않고 서둔 이유는 총선 직전에 터트려 국힘당 후보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볼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私利私慾을 위하여 국민생명을 위험으로 몰아넣은 데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탄핵 정도로는 안 될지 모른다.
최재형 변호사도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의 의료 정책이 너무 거칠다. 의료계에 구체적이고 신뢰받을 만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밥그릇 지키기' 프레임으로 의사 집단을 악마화해, 의사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갰다>고 비판했다. 이런 말을 한 최재형 변호사의 경력을 감안한다면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대통령의 증원 발표 당시 여당 의원이었는데도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난 6월 전공의 소송 당시, 정부는 '면허 취소' 카드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은 접었지만 여전히 전공의들을 범죄인 취급하면서 전공의들의 다른 병원 轉職이나 입대,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막으며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빅5를 비롯한 상급종합병원 초진 환자가 줄고 수술이 조금 지연됐을 뿐이었다. 최 변호사는 <그런데도 정부는 무슨 큰 의료 위기가 벌어진 양 의료법 59조 1항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를 내세워 전공의들을 압박>했는가, 라고 추궁한다. 최 변호사는 <행정부의 권력 남용으로밖엔 안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직전까지 여당 의원이었기에 '정부 명령이 위법하다'는 전제로 소송에 합류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법원 판단을 빨리 받아 국민 건강이나 의료 시스템을 위해 의·정 갈등을 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최 변호사는 법적 해결이 갈등 해소의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못한 게 없다"며 정부 권위로 억누르려 하지 말고 정치적 해결을 도모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전공의 한 사람당 수백만 원대의 '손해배상 및 퇴직금 청구'를 했지만, 이번 소송은 돈이 초점은 아니라고 했다. 전공의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법적 제약 해소가 목적이란 것이다. 對정부 투쟁 차원에서 정부 잘못을 판결문으로 남기고 싶다는 희망도 깔려있다고 했다.
<대다수 국민은 주 52시간 근무 권리를 누리고 있는데 週 80시간이나 연속 36시간 근무를 견뎌온 전공의들에겐 왜 '힘들면 그만둘 자유'(필수의료에) 미래가 없어 그만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기 돈 들여 공부해 의사가 된 전공의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또 국민 건강을 위해 왜 무한 희생을 강요받아야 하는지 수긍하지 못한다.>
최 변호사는 정부의 "의사는 어떤 경우든 환자를 떠나선 안 된다"는 주장과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는 의료법을 傳家의 寶刀처럼 휘두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공의 사직이 정말 '중대한' 위해를 불러오는 사안인지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는 특정 과목 전문성을 쌓기 위해 의사 면허 취득 후 개개인이 선택하는 과정이지 필수가 아니다. 현재 의료 시스템에선 수련을 강제할 근거도 없다. 하고 싶으면 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아예 관두고 싶으면 관둘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대학교수한테 대학원생 조교가 있으면 교수나 학교 모두 여러모로 편하지만, 전국 모든 대학 조교가 동시에 다 그만둔다 해도 대학 시스템이 무너지는 위기가 발생하진 않는다.
최 변호사는 <그런데도 한덕수 총리 등 정부 관료들은 연일 의료대란 책임을 전공의들에 轉嫁한다>면서 <전공의가 그만두면 당장 문제가 벌어지는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해온 건 정부>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전공의 장기不在가 불러올 의료대란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는데도 아무런 대비책 없이 전공의들이 불신하는 정책을 강행해 이탈을 불러온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고 했다. 판결문처럼 느껴지는 통렬한 비판이다.
최 변호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의사를 비롯해 전문지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합당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면서 <일하며 돈 벌고 명예까지 얻는다면 만족감이 높아져 더 열심히 일하는 그런 시스템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걸맞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관을 앞장서서 무너뜨렸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면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를 한 것이고 탄핵사유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최 변호사는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적잖은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을 원상 복귀해도 안 돌아간다"고 한다>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확고하게 박혀버린 탓이다. 이걸 먼저 풀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윤석열 대통령 참모는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의 이 글을 복사하여 대통령에게 올려야 할 것이다. 존경 받는 법률가가 윤 대통령의 의료대란 야기 행위는 대한민국 헌법이 신성시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한 무게는 겵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