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TV 댓글
낙수의삽니다. 외과 전문의입니다. 전공의 아닙니다. 그 동안 사람 살리는 수술 하고 살았습니다. 운 좋게 적당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에는 공부만 하면 됐고, 공부만 했더니 어쩌다 보니 의대를 진학했고 의대에서도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쫓아다니다가 실습 때 외과의사들이 너무 멋 있어서 쭉 외과의사로 살아왔습니다.
학창시절에도 의대시절에도 저는 소위 말하는 범생이였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는데, 그냥 내 손에 三途川(注: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 있다는 강) 건너는 사람 멱살잡아 끌어올리고 살려내고 걸어서 퇴원하고 그냥 그게 뿌듯하고 재밌어서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한 거지 경쟁에 밀려서 도태되서 어쩔 수 없이 이 길로 들어온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저는 낙수의사 낙오된 인간이 되어 있었군요. 2020년 무렵부터 이 말이 나오면서 환멸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소위 보수라는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걸 보니 그냥 헛웃음만 나옵니다.
아직 자식들이 너무 어린 암환자들, 면회 오는 미성년자 자식들 보면서 아 저 환자는 앞으로 얼마 못살텐데, 저 어린 애들은 어떡해야 되나 하면서 느끼는 무력감, 수술만 하면 살릴 자신 있는데 경제적 이유로 혹은 父子관계가 안 좋다는 이유로 복막염 수술을 거부하는 자식 보호자들 보면서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 교통사고로 복강내 다발성 장기 파열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수술방 데려갔지만 이미 산산조각 난 小腸들 보며 수술을 해도 살 수 없음을 보고 다시 나와서 설명하면 울부짖는 엄마들, 환자는 고작 7살이었는데...
많은 환자들을 살려내기도 했고 살려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살려낸 환자들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근데 놓친 환자들은 10년이 지나도 얼굴 이름 모든 게 뇌리에 박혀서 안 지워집니다. 최근에는 워낙 소송이 많아서 아예 병원 차원에서 위험한 환자는 받지 말라는 지침 때문에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 내 인생이 낙오자라고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이 낙인 찍으니까 허탈하네요.
주변을 돌아보니 저 나이면 본인 전공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인데, 지금까지의 전공을 버리고 미국으로 다들 넘어가고 있네요. 쓸데없는 글이 길었네요.
제가 예전에 병원실습 돌 때, 그리고 한창 청춘을 병원에서 불태우던 전공의 시절 갖던 생각들을 이런 유튜브 채널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건강하시고 아프지 마시길 바랍니다. 의료붕괴는 일어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이미 非可逆的으로 벌어졌습니다. 이미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