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이었던 친구가 퇴직 후 택시 기사를 시작했다. 친구는 내게 인생 막장이 회사택시를 모는 거라고 했다. 하루 종일 매연에 절어야 하고 밤에도 뛰어야 한다고 했다. 열 시간 이상 운전을 하고 차에서 내리면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그렇게 일해도 한 달에 백만 원을 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학벌과 대기업 임원을 지낸 것은 결정적인 핸디캡이라고 했다. 택시회사에서 채용해 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졸이라고 속였다고 했다. 누구나 인생의 정상에 잠시 깃발을 꽂았다가 내려오는 길은 그렇게 험한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를 낮추고 환경에 적응하는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끝일까.
교대역 부근에서 택시를 탔었다. 바짝 마른 오십대 말쯤의 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친구가 퇴직을 하고 택시를 몰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어보았다.
“힘든 건 견딜만한데 슬플 때가 있었어요.”
“슬프다니요?”
택시 운전만큼 정직한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목적지로 이동시켜 주고 기계가 알려주는 금액만큼 돈을 받으면 되는 일이다. 분규가 일어날 소지가 없을 것 같았다. 나의 단순한 추측과는 달리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쓰레기들을 만날 때 꾹꾹 참느라고 분통이 터지고 슬픈 거죠. 어느 길로 모실까요 라고 물을 때 알아서 가라고 했으면서 나중에 왜 길을 돌았느냐고 시비 거는 경우가 흔해요. 얼마 전에는 아파트 입구에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한 이백 미터쯤 후진을 했는데 갑자기 따귀가 날아오는 거예요. 자기가 현직 검사라고 하더라구요. 순간 정신없이 맞은 거죠. 차를 운전하다 보면 별별 인간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그 검사처럼 머리속에 똥같은 지식만 차 있는 놈을 볼 때. 때려 죽이고 싶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싸우면 나만 손해가 나니까 참아야죠. 누가 택시 기사를 하겠다면 난 악착같이 말려요.”
그날 저녁 시내에서 일을 보고 늦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이 일을 하기 힘들지 않아요?”
“뭐가 힘들어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운전을 하고 손님과 즐겁게 얘기하면서 돈 버는 일인데요. 저는 나이 구십까지 이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은 전부 운전을 싫어하는데 난 이 운전이 좋아요. 어디 멀리 갈 때도 운전만 시켜주면 간다고 했으니까요.”
그는 운전 자체를 즐기는 사람 같았다.
“운전할 때 외에는 어떻게 살죠?”
“제가 아들이 둘입니다. 가족하고 노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쾌락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가끔 친구들하고 포커를 하죠. 그렇지만 빠져들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한번은 돈을 따가지고 집사람한테 고기를 사가지고 들어갔더니 어디서 난 돈이냐고 꼬치꼬치 따지는 거예요. 내 마누라는 내 수입을 정확히 알죠. 평일에는 삼만 원 주말에는 오만 원 용돈으로 주는데 그 외의 돈이니까 당장 알아차리죠.”
“주위에 편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던가 진상 승객을 보면 화가 나지 않아요?”
“사람마다 타고난 환경이 다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받아들여야죠.”
분명히 그도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만났을 텐데도 뇌리에 그들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택시기사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른 것 같았다. 그가 뭔가 떠올랐는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서울 택시기사중 최고참이 여든네 살이예요. 한번은 나이가 삼십 년이나 어린 기사가 욕을 하면서 막 대하는데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하시더라구요.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얼굴을 보면 아들뻘보다 젊어보여요. 운전도 저보다 월씬 더 잘하시고 말이죠. 어떻게 그렇게 늙지 않으셨느냐고 물었더니 술·담배 하지 않고 바람 피지 않고 평생 텃밭을 가꾸고 주제에 맞게 살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존경스런 분이예요.”
네 가지 형태의 택시 기사 안에 자기의 직업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이 다 들어있는 게 아닐까. 일터가 놀이터가 되고 수행 장소가 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 그게 어떤 일이든 그에게는 천직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은 쓰레기가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을 원초적으로 막는 저항력도 갖춘 것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