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한강 씨가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읽어보면 김일성 남침으로 일어난 한국전쟁을 주변 국가들이 일으킨 대리전으로 왜곡하고, 전쟁 범죄자 측의 만행엔 침묵하면서도 미군의 문제와 미국의 대북(對北)강경책을 비판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양비론(兩非論)도 아니고 전쟁범죄자 측에 유리한 논리이다.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제목이 "미국이 전쟁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를 친다. 승리로 결말 나는 전쟁계획은 없다"이고 쟁점이 있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한국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해 한반도에 가해진 대리전이었다.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3년의 잔혹한 기간 동안 도륙당했고, 이전의 국가 영역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최근에 들어서서 이러한 비극적인 과정에서 미군이나 동맹군이 남한 주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던 몇 가지 사건들이 재조명될 뿐이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노근리 학살로서 미군이 수백 명의 시민들,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돌다리 밑으로 몰아서 며칠 동안 양쪽에서 총을 쏴 그들 대부분을 죽였던 사건이다.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 만약 그들이 남한 피란민들을 “인간 이하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들이 피란민들의 고통을 숭고한 인격체로서 완전하고 진실하게 인식했더라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거의 7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거의 매일 미국 뉴스를 접하고 있는데 위험하게도 익숙하게 들린다. “우리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매일 2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쟁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지 한반도에서 일어날 뿐입니다.”
첨예한 대립 국면에서도 오직 대화와 평화를 주장하는 한국 정부에 미국의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만 이해한다.”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한 가지만 알고 있다. 우리는 평화가 아닌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승리”는 공허하고 불가능한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다른 대리전을 전혀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 지금, 이 한반도에 살고 있다.
내가 앞으로의 몇 달을 생각해 볼 때, 지난 겨울의 촛불이 생각 난다. 매주 토요일, 남한 전역에서,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서로 노래 부르며 부패한 정부에 반대했고, 종이컵 속에 담긴 촛불을 들어, 대통령의 사임을 외쳤다. 나 역시, 그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이것을 “촛불 집회” 또는 “촛불 시위”라고 불렀었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촛불 혁명”이라 부른다.
우리는 단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촛불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결국 이를 실현했던 사람들, 아니, 수천 만 명의 존엄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연약하고 순수한 그 사람들이 카페와 찻집, 병원과 학교의 문을 매일 열며 밀려드는 새로운 순간의 미래를 위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평화가 아닌 새로운 시나리오를 말할 것인가?>
한강 씨의 주장과는 반대로 한국전은 대리전이 아니고 국제 공산전체주의의 확장을 저지, 자유세계를 지켜낸 위대한 자유수호 전쟁이었다. 한국군과 미군을 주력으로 한 유엔군의 정의로운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부흥하고, 서독은 재무장한 뒤 나토에 가입하였으며, 나토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고, 미국은 군사비를 4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에 돌입, 그 40년 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평화적으로 무너져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최종승리 하도록 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유수호의 전쟁 승리에 한국과 미국은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토만 터키 제국,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렸고,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쇼, 일본 군국주의를 파괴하였으며, 한국전은 국제공산제국을 해체, 세계사의 진보와 인류평화에 기여하였다.
한국전의 이런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고 냉전시대의 제한된 정보에 근거한 대리전 개념으로 현대사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소설로 말하고자 하는 역사도 왜곡될 개연성이 높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직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는 조건에서 김일성 남침을 대리전이라고 하여 전쟁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면 공동체를 유지하는 모든 도덕률이 무너진다. 적과 동지, 선과 악의 기준이 뒤집힌다.
그 예가 핵무장한 북한정권 앞에서 펼친 한강 씨의 무조건적 평화론이다. 이승만(李承晩)은 일찍이 '일본의 내막'이란 책에서 무조건적 평화론자는 결과적으로 적(나치 독일과 일본)을 이롭게 하는 제5열이라고 간파한 바 있다.
한편으론 그가 노벨문학상이란 명성(名聲)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분발,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한반도의 최대 비극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명작(名作)을 남기기를 기대해본다. 사회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 때 좌파 편에서 참전해보고 스탈린주의가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임일 직시, '카탈루니아 송가(頌歌)' '동물농장' '1984' 같은 불멸의 작품을 인류에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신념보다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사람이다.
나는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온다면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고발했던 솔제니친처럼 북한인권 문제의 진실을 전하는 문학가가 받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반디'라는 필명으로 북한 작가가 목숨을 걸고 써 내보낸 단편집 '고발'을 한강 씨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