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5년 일본 천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선언 방송을 했지만 조선에서는 조용했다. 사흘 동안 그랬다고 한다. 나흘째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됐지만 언론은 속보만 내보내곤 그다지 크게 보도하지 않다가 어제부턴 낯간지러운 찬사까지 동원.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오늘 조선일보는〈"거대한 파도 같은 축하"…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행복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었다. 진작 그러지 않아서 죄라도 지은 듯이 작가를 더욱 붕 띄운다. 앞으론 더 시끄러울 것이다. 축하 대열에 끼이지 않으면 반역자라도 되는 양 완장 찬 세력도 나오고, 정치에 이용해 먹으려는 세력도 나올 것이다. 벌써부터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를 극복하고”란 활자가 지면(紙面)을 장식했다.
2.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한강 작가의 책이 삽시간에 10만 부가 팔렸다는 보도가 있다 역시 우리네에게는 레밍 신드롬(Lemming syndrome)이 있는가 보다. 책을 안 사다가도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하면 서둘러 사고, 외국이 주는 상을 받았다고 하면 기를 쓰고 산다. 사대주의를 아직 못다 버린 것이다. 저런 현상도 어쩌면 작가의 위대성보다는 자기의 지적 허영을 채우려 하는 측면이 더 클 수 있다.
3. 한강 작가의 다른 책들도 덤으로 인기가 고공 행진 중이다고 한다. 노벨상만 받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양, 모든 것이 옳은 양, 모든 것에 우선하는 양 하다가 종국에는 사람 자체를 신앙적으로 우러른다. 신앙적 전설로 남기려고도 한다.
4. 우스개 하나. 몇 해 전에 승려 법정이 죽자 이를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그가 생전에 썼던 책이 중고품으로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뉴스에 나왔다. 내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인터넷에 “법정 스님의 책 3권을 팝니다 상태는 깨끗합니다 십만오천 원에 드리겠습니다.”란 글을 써 올렸다. 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안 팔면 내가 거짓말꾼이 되든지 아니면 돌멩이를 맞든지 할 것 같아서 한 권에 만 원도 안 되는 책 세 권을 십만오천 원에 팔아 먹었다.
5. 박정희 각하 시절에 광복 30주년 기념 동전을 발행하는 등 30주년을 대대적으로 알렸었다. 그때 동아일보에 ‘고바우 영감’이란 4컷짜리 만화가 대단했는데 하루는 이런 내용있었다. 젊은이 하나가 "광복 30주년. 광복 30주년" 하며 신이 난 듯 떠들고 다녔다. 고바우 영감이 젊은이에게 "광복 30주년이 그렇게도 기쁘냐?"고 물었다. 이에 젊은이가 “어. 기뻐하지 않아도 되나요?” 하고 머리를 끍적이며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