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낸 의견 광고
나는 2022년 3월 20일 《문화일보》에 내 돈으로 의견 광고를 내고 비판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는 말을 강조하셨는데 청와대는 대한민국 민주 발전의 사령탑이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제왕적 요소는 없지 않았지만 지난 70여 년 한국 현대사 중심부를 이렇게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사실에도 맞지 않고 일종의 선동입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은 주석궁이지 청와대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분단 현실에 비추어 청와대의 특수한 처지를 양해하고 참아왔지 않습니까?
광화문과 용산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광화문은 조선조와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이 뿌리내린 곳이고 한반도 전체의 중심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이곳을 떠나면 역사성을 잃게 됩니다. 외세와 병영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용산은 민족사의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국방부는 국방 용도로 지은 건물입니다. 이를 대통령 집무실로 쓰는 것은 변칙적 용도 변경으로서 국격에 맞지 않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한 추진 과정에서 군인들, 건축가, 교양인,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흔적이 없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청사는 대한민국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할 역사적 건물인데 어떻게 임시정부 청사 마련하듯 합니까?
무슨 이유를 대든 이렇게 무리를 한 이유는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에 별생각 없이 한 말을 물리면 체면에 손상이 된다고 (생각하여) 밀어붙인 것 아닙니까? 이런 태도가 진짜 제왕적 권력의 행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까?
국군통수권자가 되실 분이 국군장교단을 이렇게 무시해도 됩니까? “한 달 안으로 짐 싸서 나가라”는 식인데 입이 있어도 “역시 군대 안 갔다 온 대통령답다”는 말은 못 하게 되어 있는 그들로부터 가슴속 존경을 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9·11 테러 때 펜타곤 안에 백악관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국가 지휘자인 대통령과 국방 지휘자인 국방부 장관이 붙어 있을 때 김정은이 미사일, 장사정포, 핵무기로 때리면 동시에 무력화되는데 이런 위험성은 고려했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도 두 기능을 모아놓진 않습니다. 합참의장 출신 11명이 반대한 일입니다. 김정은이 좋아할 일을 왜 서둘러 합니까?
5년 뒤 어느 대통령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도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고 국격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전이나 신축 공약을 내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기자 생활 52년째인 해방둥이로서 경험상 권력자가 허영과 오만에 빠지면 예외 없이 끝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께서는 역사 앞에 겸손하셔서 선거유세 때 그토록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을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기원합니다.〉
“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
유춘수 건축가 사진=조선 DB. 김용현 국방부 장관 사진=뉴스1
2022년 3월 20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설계자인 건축가 유춘수(柳春洙) 선생이 건축가로선 거의 유일하게 반론 글을 발표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의 얼굴이 되어야 할 대통령 청사를 저 볼품없고 상징성과 역사성과 기능성과 장소성 모두 최상이라고 할 수 없는 국방부 청사를 영구적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분명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급히 서둘러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속담에 이만한 표현은 없습니다. ‘언 발에 오줌 누다’… 제발 동상의 후유증이 없길 빌고 빕니다!〉
지금 국방부 장관인 김용현씨는 윤석열 후보의 경호를 맡았었고 당시엔 대통령실 이전의 책임자였는데 2022년 3월 21일 TBS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나와 당선인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 당선인께서 회의석상에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청와대, 나도 들어가서 편안하게 하고 싶다, 거기 들어가면 얼마나 좋으냐. 눈치 안 보고 내 마음대로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고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정말 국민을 위하고 국가를 위한다면 그게 아니고 내가 불편하더라도 나와야 된다. 왜 그러냐. 내가 편하면 그게 바로 국민의 감시가 없어지고 국민의 눈에 띄지 않으면 거기서부터 불통이 나오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부정부패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께서 내가 근무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도록 아예 해달라 해서 용산으로 가셔서 공원을 앞에 만들고 거기서 대통령 집무실을, 그 국민들께서 마음대로 들어오셔가지고 쳐다보게 만들고 그게 결국은 대통령이 함부로 못 하게 하는 견제 행위라는 겁니다.”
그는 현재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기자회견 횟수가 가장 적다는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3월 23일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사일 시대인 지금 산들에 둘러싸인 청와대야말로 분단국가 대통령이 입지할 최적의 장소… 대통령들의 불운은 청와대가 흉지여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해서다”라고 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졸속 용산 결정’에 괜히 국민을 들먹인다며, 국민 다수 여론은 용산 이전 반대니 문재인 대통령의 협조 거부를 몽니로 여기지 말고 심사숙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게 불편하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제왕적 통치에서 벗어나라고 했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가 국민을 들먹이며 스스로 안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지 국민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라며 “청와대가 공원이 되지 않아도 그 일대는 충분히 좋다.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청와대 정문 앞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서울 최고의 산책길 중 하나다. 성곽길을 따라 청와대 뒤편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도 잘 조성돼 있어 굳이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청와대를 (관)통해 올라갈 필요도 없다”고 했다.
“승효상·유홍준씨 등 문재인의 친구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청와대 흉지(兇地)론을 들먹였다. 청와대 옛 본관이 있던 수궁 터는 예부터 길지(吉地)로 꼽힌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총독이 그곳에 관저를 지었다. 대통령 개인과 달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길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상머슴’으로 뽑히자마자, ‘새 집’ 요구
2022년 3월 25일 최보식 기자(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도 비판에 가세했다.
〈당선 직후 이를 ‘국정 제1과제’로 만든 것은 윤 당선인의 중대한 실책이었다. 새 정권을 준비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모든 이슈들이 여기에 파묻혔다. 용산 이전 찬반에 대해 온갖 주장과 풍수설, 음모론, 이념적 갈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와 기름을 붓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은 윤 당선인의 ‘오기’가 자초한 것”이라면서 “대체 본인이 일할 집무실이 무엇이 그리 급한가. ‘상머슴’으로 뽑히자마자, ‘새 집’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머슴이 그래도 되는가. 이미 주인이 정해놓은 그 ‘집’에 들어가면 될 일이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자리는 국민의 땅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돌려주고 말고 할 곳이 아니다. 국민들이 언제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있나. 그러니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청와대를 이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당선인처럼 ‘나는 폐쇄적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그 공간에 들어가기 싫으니 다른 곳에 집무실을 마련하겠다’고 하면, 다음 대통령은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옮겨온 용산 집무실은 싫고 세종시에 집무실을 마련하겠다’고 나올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 당선인은 ‘혁명’을 한 게 아니다. 0.7%포인트 표차로 당선된 5년짜리 대통령에게 국민적 합의 없이 대통령 집무실을 옮길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최보식 기자는 이렇게 끝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로 들어가라. 누구 말대로 ‘귀신’ 나오는 곳 아니다. 이런 집무실 타령으로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국민 분열을 초래하면 안 된다. 그리고 5년 금방 지나간다.〉
그런 식으로 의료 개혁 한다고 하다가
강원택 서울대 교수. 사진=조선DB
2021년 11월에 이미 윤석열 당선을 예언했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2년 3월엔 〈한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기 없는 개인적 사업으로 출발했다〉는 제목으로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비판했다. 이 잡지는 “대통령이 그곳에 위치하게 되면 미사일 한 방에 군사, 정치 지도부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면서 선거운동 기간엔 코로나19 피해 대책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하더니 정치적 자산을 개인적 사업을 강행하는 데 허비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발한 윤석열 당선인은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 그의 시도가 국민들을 더 멀리 밀어내는 결과를 빚을 것 같다고 예언했다.
그 무렵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에서 “‘내가 결정했으니 그대로 가자’는 식으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취임 첫날 새로운 공간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차별화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정권 교체가 바로 차별화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발표에 더욱 주목했던 것은 어쩌면 이것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부작용이 불가피해보이는 용산으로의 조기 이전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말리거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없었을까. 소통을 강조하는 당선인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국민과의 소통에 앞서 주변과의 소통이 더 중요해보인다.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짜 정치의 시작이다.〉
강 교수의 우려는 시간이 지나니 현실이 되었다. 윤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 식으로 이른바 의료 개혁을 밀어붙였다가 의료 대란을 일으켰다. 참모들이나 언론이 청와대 이전을 말렸다면 의료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잠식하고 들어갔다. 한국 갤럽이 2022년 3월 넷째 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청와대 집무실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53%,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이 좋다’ 36%로 나타났다. 10%는 의견을 유보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 5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보는지, 잘 못 수행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55%가 ‘잘할 것’, 40%가 ‘잘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이외는 의견을 유보했다. 전임 대통령들의 당선 2주 이내 즈음 직무수행 긍정 전망은 80% 내외였다. 2007년 12월 이명박 당선인은 84%, 2012년 12월 박근혜 당선인은 78%,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8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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