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이 가장 큰 원인이 되어 낮은 지지율로 출발했고, 2022년 여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젊은 층과 중도층이 이탈, 20%대를 찍었고, 총선 직전 잠시 올랐다가 의료 대란으로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 다시 20%대로 떨어져 오늘과 같은 위기를 불렀다. 이 3대 실책의 공통점은 정보 판단의 오류와 무모한 밀어붙이기인데 쉽게 말하면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다.
2022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용산 대통령실 이름을 ‘People’s House’로 짓고 싶다고 했다. People’s House는 제정(帝政)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개념이고 이게 서유럽에 퍼졌는데 거의가 좌익 운동, 노동자 운동, 공산주의자 운동과 연관되는 개념이다. 대통령실 이름을 공모하더니 발표도 하지 않고 흐지부지, 지금껏 이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3년이 되어도 부모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아가야”라고만 부르고 있으니 그도 속으론 아기의 장래를 비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2022년 4월 박찬주 예비역 대장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띄운 공개장을 발표했다.
이런 식으로 군대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군에 대한 군통수권자의 예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식이 살고 있는 집을 예고도 없이 나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예의일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는 지금 계획과는 반대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먼저 수방사를 남태령 지역 내에서 재배치해야 합니다. 근무와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재배치한 후 그곳에 합참 신청사를 구축하여 합참의 기능을 완비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국방부를 현재의 합참 위치로 이전하고 국방부와 합참의 안정적인 임무수행 태세가 검증된 후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야 합니다.〉
그는 군통수권자이기 때문에 군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한 강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무렵 용산 대통령실을 다녀온 언론사의 한 간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무지 국격(國格)에 맞지 않는 건물이란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구청 건물 수준이라고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이전 논리는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적용하면 이런 볼품없는 공간에서 일하면 대통령이 구청장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게 된다.
이태원 사고의 원인과 용산 이전
2022년 6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비공개 오찬 회동을 했다. 한 참석자는 《조선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가 개방된 청와대를 뒤늦게 둘러본 뒤 ‘미리 봤으면 우리도 청와대에 그대로 있자고 했을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라고 했다. 김건희 여사는 5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KBS1 TV 〈열린음악회〉를 관람한 뒤 청와대 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등을 둘러봤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여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알았다면, 만약 여기 와서 잠시라도 살았다면 청와대를 나가기 굉장히 어려웠겠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속으로 ‘아, 안 보여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저는 과거에 관저 식당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청와대가 얼마나 좋은지 알았다. 여기에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청와대에 안 들어가고 바로 집무실 이전을 추진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150명 이상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해 12월 5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상민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게 옳다”고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 관해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장이 그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대통령의 설명은 의외였다고 최근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공개하였다.
설명의 요지는,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하여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이 장관을 물러나게 하면 그것은 억울한 일이다”였다고 한다. 김 의장은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서 나오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그런 방송은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고 썼다. 대통령실은 이 주장에 대하여 왜곡된 것이라며 “대통령은 당시 언론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전부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법원은 지난 9월, 2022년 10·29 이태원 사고에 있어 ‘국가 기관의 책임’을 묻는 첫 판결에서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경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고 ▲정보 기능을 핼러윈 현장에서 배제했으며 ▲범죄 단속에만 치중한 치안 대책을 수립했다고 짚었다. 다만 재판부는 참사 당일 이태원에서 정보·경비 기능이 부재(不在)했던 배경으로 “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시위가 예정돼 있어 용산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로서는 집회·시위 대비와 핼러윈 데이의 질서 유지를 모두 담당하게 됨으로써 경찰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고 용산서가 집회·시위 대응에 집중하는 연쇄 효과로 핼러윈 데이 안전 유지에 구멍이 생긴 측면도 있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 관저 공사는 부실·부정투성이!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옮긴 후에도 청와대 영빈관과 상춘재를 자주 이용했다.
사진은 2023년 5월 12일 상춘재에서 국회의장단과의 만찬 모습이다. 사진=대통령실
2023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업무보고를 받은 것에 대해 “윤 대통령은 최근 한 달간 영빈관 12번, 상춘재 2번 등 청와대를 모두 14번이나 사용했다. 한 달에 14번이나 찾을 거면 왜 청와대를 나온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한 현안 브리핑에서 “용산 대통령실에는 부처 업무보고를 받을 공간조차 없다는 말이냐. 준비 없이 졸속으로 대통령실이 이전된 결과”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변인은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청와대를 전면 개방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더니 한 달의 절반 가까이를 대통령이 사용한 것”이라며 “무책임한 대통령 때문에 집무실 이전은 아무런 효용을 거두지 못하고 안보 공백과 국민 불편만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시스템을 갖춘 청와대를 버린 대가는 막대한 혈세 투입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국민 소통이라는 취지도 대통령의 불통 행보로 퇴색된 지 오래”라고 했다.
2024년 9월 감사원은 집무실 및 관저 이전 공사와 관련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동아일보》가 사설로 ‘복마전’이라고 표현할 만큼 총체적인 비리가 드러나 고발, 징계 조치 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가장 중요한 보안 시설이란 점에서 문제를 깊게 따진 언론이나 정당은 없었다. 감사원이 대통령 비서실에 통보한 〈대통령 관저 보수 공사 관리 감독 업무 부당처리〉 공문엔 이런 대목이 있다.
〈공사 감독자가 공사 총괄 담당인 대통령실 김 모 비서관에게 업무 부담으로 공사 현장 방문을 자주 할 수 없는 사정을 토로하였으나 “현실적으로 인원을 더 투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가진 직원은 당신뿐이니 업무를 잘 해보라”는 취지로만 답변하며 업무 조정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저 보수 공사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담당 직원이 공사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직접 공사 현장을 방문하여 점검하는 등 다른 관리 감독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공사를 수행한 총 26개 업체 중 19개 미등록 (무면허)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는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한 시공에 대한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신설 대통령 관저엔 과연 도청 장치가 설치되지 않았을까?
감사원의 통보서는 “김 비서관이, 공사를 신속히 추진한다는 데에만 중점을 두고 법령상 절차와 다르게 추진된 관저 보수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을 면밀히 관리하지 않고 실무자에게 맡겨두는 등 총괄 책임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이에 관저와 같은 주요 국가 시설 공사에 자격이 없는 업체가 참여하거나 사후 책임 소재 확인 등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줄이면 청와대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관저 공사에 무허가 회사들이 무더기로 참여, 부실 및 불법 공사가 전면적으로 이뤄졌는데 보안에서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하여 김 당시 비서관은 “사업의 속도감을 고려하고 주(主) 시공 업체를 신뢰함으로 인해 섭외된 협력 업체에 적정 자격이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 시공 업체는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다는 ‘21그램’을 가리킨다.
이 통보서엔 아주 예민한 지적이 있다.
〈통신 공사의 경우 미등록 전기 공사 업체가 공사를 수행하였는데도 이에 대한 통제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이전을 찬성했던 사람들 중 일부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싫어한 이유가 청와대에 북한이 깔아놓은 도청망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란 이야기를 퍼트리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감사원이 확인한, 전면적 부실 공사를 한 대통령 관저는 안전할까, 이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