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을 넘기지 못하고 사퇴한 국민의힘 한동훈(韓東勳) 전 대표가 1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이 냈던 입장글을 정리해 올렸다. 지지자들에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즉시 정치활동에 나선 것이다.
한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언론을 통해 공개한 영상을 올리며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제가 SNS로 낸 5회의 입장”이라고 적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다. 국민과 함께 막겠다”
“즉각 국회 차원에서 계엄해제 요구할 것”
“군이 국회에 진입하고 있다. 군경에게 말씀드린다.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하고 부역해서는 절대 안된다”
“국회가 계엄 해제안을 결의했다. 계엄은 실질적 효력을 다 한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부터 대한민국 군과 경찰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기관은 위법,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발생한다“
“대통령께서는 국민과 국회 뜻을 존중하고 즉시 헌법에 따라 계엄령 해제 선포해 달라”
한동훈의 길지 않은 정치역정에서 계엄선포 직후의 기민한 대응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큰 정치적 자산이다. 이런 엄청난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빨리(이재명보다 먼저일 듯),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렵다. 만약 韓 대표가 주저하면서 타이밍을 놓쳤더라면 지금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세력으로 몰려 수사대상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의 정치생명도 끝났을 것이다. 이런 한동훈 대표에게 윤석열 잔존세력이 탄핵소추 의결의 책임을 씌워 대표 자리에서 몰아냄으로써 국민의힘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졌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反헌법적 계엄선포를 찬성하는가? 반대하지만 탄핵감은 아니란 것인가? 윤석열의 계엄선포를 비호하는 입장이 당론이라면 그런 정당이 배출한 대통령 후보가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있나?
이런 질문에 권위 있게 답할 수 있는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한 사람도 없다. 지난 3일 이후 국민의힘은 대표 개인 아닌 당의 이름으로 정리된 입장을 내어놓은 적이 없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수나 당을 위해서 탄핵을 막아야 한다, 다음 대선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하야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公黨이 아닌 私黨, 즉 패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108명 의원들 중 경상도 출신이 60명이나 되는 국민의힘은 일종의 토호세력화되었다. 이들은 大權보다는 黨權에 더 목을 매고, 정권을 잃더라도 기득권(공천권)만 지키면 야당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결정적 실수인 청와대 졸속 이전, 이준석 몰아내기, 의료대란에 대하여 국민의힘은 한번도 견제나 정책수정을 시도한 적이 없다. 윤석열을 현혹한 부정선거음모론이 거짓말이란 것을 알면서도 "아니다"고 정리해주지 않아 결국 망상적 계엄령을 부른 것이다. 2020년 4월 총선 직후 국민의힘의 前身 미래통합당이 음모론에 대하여 보인 비겁한 자세가 지금 국민의힘을 삼키고 있다. 自業自得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도 추종적 자세이다. 영혼이 망가진 정당이다.
정치적으로 이미 無力化된 윤석열이란 썩은 새끼줄을 잡고 인수봉을 오르려 한다. 신성로마제국이 신성하지도 로마같지도 제국답지도 않았듯이 국민의힘은 자유도 보수도 정당도 아니다. 부정선거음모론이란 呪術에 빠진 윤석열을 무작정 추종한다는 점에서 이 당은 컬트그룹에 가깝다. 걸트집단은 邪敎집단이라는 뜻인데 여론으로부터 몰릴수록 세상과 사실을 멀리 하고 극단화 소수화의 길을 걷다가 자멸한다.
한편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李俊錫) 의원은 "만약 한 전 대표가 정치에 계속 뜻을 두고 길을 간다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했다. 이 의원은 어제 페이스북에 "한 전 대표의 퇴임을 보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든다"며 "저와 방식은 달랐지만 나름의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그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 한동훈 전 대표에게 제가 했던 평가와 조언들은 진심을 담아 했던 것들이다. 다 겪어봤기 때문에 비슷하게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며 "대한민국이 잘되길 바란다는 한동훈 전 대표의 마지막 한마디에 깊이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에게 도전했다가 밀려난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이 汎보수 진영에서 살아남은 유이(唯二)한 정치인이다. 내년에 40세가 되는 이준석 의원이 대선판에서 50대 한동훈과 경쟁 협력하면서 정치교체, 세대교체의 깃발을 들고 국힘당과 민주당의 검투사 정치에 도전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