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문제의 근원 '김건희 특검' 피할 수 있겠나>라는 칼럼에서 비상계엄령 선포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김건희 여사 보호였을 것이란 추정을 내어놓았다.
그는 <무엇이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해 이런 일까지 벌이게 만들었느냐는 의문이 계속 맴돈다>고 話頭를 던지고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정부 각료와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남발하고 민주당 단독 예산을 통과시키려 한 것을 계엄 선포의 주 이유로 들었>고 <부정선거 의혹에도 빠져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윤 대통령의 무모한 계엄 선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하려 하면 주변 사람들도 ‘이 문제 때문에 무언가 터지겠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안 처리 때문에 윤 대통령이 엄청난 일을 벌일 수도 있겠다고 느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료 탄핵과 예산 문제 외에 윤 대통령을 심각하게 압박한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묻게 되는데 역시 김건희 문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계엄군의 체포 명단에 여권 인사로는 유일하게 한동훈 여당 대표가 체포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 독주에 대해선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 왔다. 윤 대통령이 순전히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 때문에 계엄을 편 것이라면 한 전 대표를 체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당 대표 체포는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인데 한동훈이 이재명 사람이 아닌데 왜 체포를 할까, 역시 김건희 여사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시중에서는 계엄 다음 날부터 윤 대통령의 ‘김건희 수호 계엄’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과정 전체를 보면 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게 양상훈 주필의 촉이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대표가 김 여사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하자 윤 대통령은 한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한 대표는 수류탄 정도를 던졌는데 윤 대통령은 원자폭탄으로 대응했다. 총선 직전이어서 윤 대통령의 원폭은 국민의힘 선거를 망칠 수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 여사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윤 대통령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고 양상훈 주필은 말한다.
윤 대통령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린 사건은 지난 10월 4일 김건희 특검법 국회 재의결이었다. <이 표결에서 국민의힘 이탈표가 4표 나왔다. 그토록 표 단속을 했지만 ‘철통 단결’은 허상임이 드러났다. 다음 표결에서 4표만 더 이탈하면 특검법은 통과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자신감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 즈음부터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바닥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이탈표 추가 가능성은 점점 높아졌다. 위기를 느낀 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여의도로 보내 국민의힘 의원들과 단합 오찬까지 하게 했는데 양상훈 주필은 이것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사실상 표 단속이었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김건희 특검법 3차 재의결 날짜가 12월 10일로 잡혔다. 윤 대통령 주변에서 ‘특검법을 수용하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는 윤 대통령 부부를 모르는 ‘순진한’ 충언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이 격화됐다. 한 전 대표를 겨냥한 친윤 측 공격이었다. 그러자 친한계가 국회의 12월 10일 표결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찬성할 수 있다는 얘기가 11월 하순부터 여권에서 돌기 시작했다.
11월 27일 친한계 의원이 라디오에서 특검 찬성 가능성을 언급했고, 11월 28일엔 한 신문이 ‘한 대표, 김건희 특검 고려’라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이 보도와 같은 내용의 보고를 당에서 받고 있었을 것이다. 양상훈 주필은, 윤 대통령이 군경 핵심들을 불러 모아 계엄을 본격 논의한 것은 이 보도 3일 뒤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틀 뒤 계엄이라는 수소폭탄을 던졌다. 체포 명단에 ‘한동훈’은 빠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김건희 특검안 통과를 막기 위한 예방적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계엄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고 막으려 한 것은 김 여사 문제뿐이었다. 김 여사 문제의 폭발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여사 특검은 더 이상 막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특검에서 부수적으로 김 여사 국정 개입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우려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김 여사 문제는 수사를 피할 수 없다. 수사 이전에 무차별 폭로부터 나올 것이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가 기각돼 직무에 복귀하더라도 특검이란 시련을 거쳐 그가 부인 문제에서 해방됐으면 한다. 그게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필자는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8월 초순부터 윤 대통령 머리 속에서 계엄령 발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취임 1년도 안 되고, 큰 잘못도 없었던, 다만 깐깐한 신원식 장관을 갑자기 안보실장으로 밀어낼 때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품고 있던 비상조치의 아이디어가 김건희 여사 특검안 통과 가능성으로 해서 더욱 구체화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의료대란으로 인한 스트레스, 부정선거 의혹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망상이 겹친 것이 아닐까? 윤석열이 사랑하는 한 여성을 위해 나라를 절단낸 권력자로 기록된다면 그는 양귀비 때문에 唐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갔던 현종의 환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