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에 신분을 숨기기 위한 ‘위조 신분증’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처음 공개됐습니다. 조진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우크라이나 매체인 ‘이보케이션 인포’(Evocation.info)는 20일 사회연결망서비스 텔레그램에 러시아가 북한 군인들에게 가짜 정보가 담긴 위조 신분증을 발급했다며 관련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습니다.
매체에 따르면 이 사진들은 쿠르스크에서 사망한 북한 군인의 소지품에서 나온 러시아군 신분증으로, 1997년 4월 13일에 태어난 투바 공화국 출신의 ‘킴 칸볼라트 알베르토비치’란 이름의 병사에 발급된 것입니다.
신분증에는 바이안탈라 마을에서 태어난 이 병사가 2016년 중등 기술 교육을 받고 지붕 공사 일을 하다가, 이후 투바 제55 산악보병여단에 징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페이지의 이 신분증 중간에는 총알이 뚫고 지나간 것처럼 구멍이 나 있고, 혈흔으로 추정되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보케이션 인포는 “킴이라는 이름과 출생 연도를 조사한 결과, 해당 인물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며 “문서에서 유일하게 사실로 확인된 정보는 첫 페이지에 있는 서명으로, 이를 통해 사망한 군인의 실제 이름이 ‘리대혁’임을 알 수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사진을 보면 신분증 첫 페이지에 한글로 리대혁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아울러 매체는 이 신분증에 사진과 명령 번호 등 필수 정보가 들어있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신분증에는 이 병사가 2016년부터 복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2024년 10월 10일에 처음으로 무기를 지급받았고, 군번 역시 그 다음 날 발급받은 것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매체는 이를 근거로 러시아 군 당국이 북한군의 참전을 ‘합법화’하기 위해 수천 개의 가짜 신분증을 발급하여 북한 군인들을 투바인, 부랴트인 등 러시아 내 소수 민족으로 위장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해당 신분증의 진위를 자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 사실을 숨기기 위해 위조 신분증을 지급했다는 발표는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지만, 실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앞서 한국 국정원은 지난 10월 북한군 파병 사실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가 전장 투입 사실을 숨기기 위해 북한인과 유사한 용모의 시베리아 일부 지역 주민의 위조 신분증도 발급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르히 올레호비치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도 지난 10월 말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는 북한 군인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러시아 신분증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 부대표는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러시아가 북한 군인의 신원을 숨기려 한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선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러시아나 북한이 자국 군인의 신원을 숨기려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됩니다. 결국 그들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는 실제 러시아가 북한군에 위조 신분증을 줬더라도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맥스웰 부대표] 러시아와 북한의 또 다른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왜나면 이 군인들이 포로로 잡히거나 죽임을 당하면 그들의 신원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그들을 러시아 민족이나 다른 민족으로 위장하는 것은 실질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이보케이션 인포는 지난 17일 러시아 쿠르스크의 한 병원에서 북한군 부상병 100여 명이 치료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