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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역시, 나훈아는 나훈아다 '사내'의 가사처럼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를 굳게 믿는다. 문무대왕(회원)  |  2025-01-14
가황(歌皇) 나훈아는 58년 노래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며 "나훈아의 목소리는 여기서 멈춥니다"라고 관객들에게 신고했다. 언론에서는 나훈아를 가황(歌皇)이라 부르지만 필자는 나훈아를 가성(歌聖)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훈아는 세칭 '딴따라'로 출발하여 가황이란 칭호를 얻었으니 이제 가황의 지위를 넘어 대중가요의 성인(聖人) 반열에 오를 만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위대한 작곡가를 악성(樂聖)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서양 작곡가들은 작곡 한 분야에 그쳤지만 나훈아는 작사, 작곡, 연주(노래) 등 음악의 3대 요소를 모두 소화해 낸 대중가요의 달인(達人)이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자작곡 1200여 편, 발매곡 2600여 곡, 앨범 200여 편을 남겼다. 나훈아는 고별공연을 끝내면서 팬들에게 "이제 제 내 노래는 여러분이 불러주이소오"라 부탁했다. 나훈아가 서울 공연을 끝내면서 남긴 어록(語錄)이 정치판을 강타했다. "니는 잘 했나" "국민 편가르기를 하면 안돼"…잘한 것도 없는 정치 나부랭이들을 향해 호통친 것이다.
  
  나훈아는 팔랑거리는 얄팍한 연예인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에 한눈 팔지도 않았다. 오로지 독립된 존재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대중예술가의 한 길만 걸어왔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지 허황된 곁눈질하면 안된다는 것이 나훈아의 생활 철학이었다.
  
  기껏해야 5년뿐인 권력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는 정치판의 꼴불견을 질타하면서 나훈아는 살아왔다. 그리고 떠나면서 한 마디 남긴 것이 정치판의 화두가 됐다. "니는 잘 했나?"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좌파 나부랭이들을 야단친 것이다. 나훈아가 2022년 '어게인 코리아'를 외치며 공연하면서 자작곡 '테스형'을 절창하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나훈아는 반공주의자다. 수많은 대중가수들이 김정일·김정은에게 굽신거리며 상납하고 평양공연을 하고 있을 때, "내가 그놈들한테 돈 줘가면서 노래해야 하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한 사례가 나훈아의 정체성을 입증했다.
  
  2022년 10월 어느 날 필자가 조갑제닷컴에 '나훈아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면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칼럼을 발표한 바 있다. 부산 동백섬을 아침산책하면서 세 명의 여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지나가면서 듣고 쓴 내용이다. 당시 KBS가 방영한 '나훈아의 어게인,코리아'에서 나훈아의 거침없는 발언에 매료된 여인들의 얘기였다.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조갑제 기자였다. 칼럼 내용을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 올렸다. 칼럼의 요지는 이랬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나 미국의 레이건도 연예인 출신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연예인이 대통령 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지저분하고 구린내 나는 정치 깡패들보다는 나훈아가 국가관도 확실하고 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뛰어난 독창적 가창력으로 뻥 뚫어주는 그 시원시원함이 청량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요지였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의 침공에도 2년여를 잘 버텨내고 있음이 가상하지 않은가? 궁지에 몰린 푸틴이 김정은으로부터 차출한 용병인 북한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설원(雪原)의 까마귀 먹잇감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참상(慘狀)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훈아가 어릴 적 살았던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옆 네거리 코너에는 4층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나훈아 거리'로 명명돼 있다. 이제 한국 대중가요의 가성(歌聖), 나훈아는 무대를 떠났지만 나훈아가 남긴 불멸의 음악은 국민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그가 마지막 부른 자작곡, '사내'의 가사처럼 '훈아답게 살다가 훈아답게 갈 거다'를 굳게 믿는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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