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습니까?"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첫 출석하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런 질문을 했다.
그날 밤 계엄 선포 직전에 윤 대통령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을 불러서 주었다고 알려진 '조속한 시일 내에 예비비를 확보하고 국회에 각종 자금을 끊어라,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쪽지에 관한 것이다. 이 쪽지는 이미 증거물로 확보된 상태다.
이 쪽지대로라면,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후 입법부인 국회를 무력화하고 그것을 대체할 초헌법적 기관을 설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1980년 5·17비상계엄 전국확대 이후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성격에 해당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 고유권한이라 해도 국회를 무력화할 경우 이는 헌법 위반이 된다. 다시 말해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내란죄' 성립 요건이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문형배 헌재 권한대행의 질문에 "저는 이걸 준 적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이런 계엄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에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에서 봤다"며 "기사 내용도 부정확하고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장관은 그때 구속되어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다"고 답했다. 비상입법기구가 적힌 쪽지의 책임을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전가한 것이다.
지난 18일 서울서부지법 구속영장실질 심사에서 차은경 부장판사가 출석한 윤 대통령에게 딱 한 가지 질문했다는 것도 바로 이 질문이었다.
"'비상입법기구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계엄 선포 이후에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습니까?'
그때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장관이 썼는지 내가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비상입법기구를 진심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쪽지의 존재는 인정했던 답변이 사흘 뒤 헌재에서는 "자신은 준 적도 없고 뭔지 모르겠고 혹 김용현 장관이 알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은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당시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을 지휘했던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들은 "총을 쏴서라도, 도끼로 문짝을 부수고라도 들어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있다. 김용현 전 장관의 검찰 공소장에도 다 기록돼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회 의결이) 막거나 연기한다고 막아지는 일이 아니다"며 "대한민국에서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 갑(甲)'인데 만약에 무리를 해서 계엄 해제 요구를 못하게 한다 해서 국회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치 국회와 언론보다 더 힘센 '초 갑(甲)'이 되기 위해 계엄을 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면서 "국회가 국회법에 딱 맞지 않는 신속한 결의를 했지만 저는 그걸 보고 바로 군을 철수시켰다"며 국회를 봐줬다는 식으로 덧붙였다.
또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의 사유로 언급된 '부정선거론'에 대해 "계엄을 선포하기 이전에 여러 가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게 많이 있었다"며 "2023년 10월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 전산 장비의 극히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부정 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리닝(점검)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지시한 것)"고 했던 것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자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체포됐을때, 윤 대통령 페이스북에서 공개한 지지자들을 향한 자필 편지에는 "너무나 많은 부정선거 증거들이 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헌재 탄핵재판에서 '대통령' 답지 않게 자신이 했던 행위나 사실관계에서 '법꾸라지'처럼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계엄을 했으면 그 대의명분과 취지로 재판관을 설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헌재 재판이 시작되자 곧바로 손을 들고 “뭐라 말씀드릴지 모르겠지만 양해해주시면 일어나서 (발언) 할까요”라며 발언 기회를 구했다. 문형배 권한대행이 허락하자, 윤 대통령은 약 1분간 직접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생활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란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헌법수호를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우리 재판관님들께서 여러모로 잘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리겠다'며“헌법 소송으로 업무 과중하신데 제 탄핵 사건으로 고생하시게 되어 재판관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남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메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한 모습이었다.
출처 : 최보식의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