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가 해안로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에서 꼬막비빔밥으로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평선 위로 어둠이 내려와 있었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때였다. 거친 물결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서 동그란 공 같은 게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 같았다. 내가 귀신을 봤나? 하고 깜짝 놀라 다시 보니까 분명 사람이었다. 검은 잠수복을 입고 있어 얼굴만 보인 것이다.
“해녀예요?”
내가 물었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틈 사이는 위험했다.
“그래요.”
“이 깜깜한 밤에 왜 혼자 바다에 있어요?”
“문어를 잡으려구요. 이때쯤 바다로 들어가면 문어가 굴에 서 나와 걸어 다녀요. 그걸 데리고 나오는 거죠.”
“깜깜한 밤에 혼자 바닷속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수심도 5미터밖에 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바다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돌아섰다. 그녀의 장딴지에 차고 있는 칼 지갑과 거기에 꽂혀있는 묵직해 보이는 금속의 칼잡이가 하얀 가로등의 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바닷가 풍경이다.
오일마다 열리는 장터도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북평의 장터 주변의 마을들은 마치 오래전에 만들었다가 폐기한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저기 빈 집들이 많다. 철조망 쳐진 마당 안에는 풀이 가득 돋아나 있고 담쟁이가 낡은 건물을 싸안고 올라가고 있다. 마을의 앞 길에는 일제시대 때부터 지은 작은 단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기울어 가는 먼지 덮인 슬레이트 지붕 아래의 낡은 창틀에는 페인트로 ‘기름집’이라고 쓴 가게가 있다. 그 옆으로 ‘떡집’ ‘잔치국수집’ ‘돼지국밥집’도 보인다. 골목에는 난전들이 들어차 있다. 호떡을 하나 사서 들고 장터를 두리번거리는 게 취미가 됐다. 구운 문어를 사고 튀각을 사고 떡을 산다. 내가 군고구마를 사기 위해 길가의 드럼통 화덕 앞으로 간다.
“자자분하고 못 생긴 고구마를 찾는 손님이 오셨네.”
군고구마 장사는 나를 그렇게 기억한다. 크고 잘생긴 고구마는 맛이 없다. 그가 커다란 봉지에 퇴짜맞은 고구마를 쓸어 담아 가득 채운다. 그리고 큰 고구마를 하나 덤으로 담으면서 말한다.
“잘 생긴 놈도 하나 가져가세요.”
투박한 행동에 정이 담겨있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서울의 친구들은 나보고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사느냐고 묻는다. 외롭고 무섭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한다. 처음에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차량의 물결로 꽉 차 있는 서울에 있다가 어둠에 싸여 있는 적막한 해변도로를 봤을 때 그랬다. 전신주 중간에 매달려 있는 전구가 땅바닥을 희미하게 비추는 바닷가 마을도 쓸쓸해 보였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갯마을 동네도 있었다. 고양이와 귀신만 사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진공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인간은 어떤 환경도 금세 익숙해지는 것 같다. 해녀가 깜깜한 바다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듯 나도 바닷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 같다. 밤바다의 적막함을 즐기고 파도가 들려주는 소리에 마음의 귀를 기울인다.
흑백 화면 같은 으스스한 골목의 오래된 집들이 갑자기 원색으로 변해 유년 시절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놀던 동네로 변하는 것 같았다. 유년 시절의 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제는 산책길에 알게 된 팔십대 노인과 바닷가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옥계 신선’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노인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자유와 존재’를 찾으려고 67살에 여기 와서 82살 먹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자식까지도 여기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는 만족해요. 남들이 어떻게 이 생활의 풍만함과 자유를 알 수 있겠어요. 나는 50살에 묶여있던 은행원 생활에서 탈출했어요.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걸 두려워하죠. 그러나 탈출해 보고 다른 세계를 본 사람만이 갈매기 조나단같이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바닷가의 철학자가 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해안로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 하나를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단골 음식점 주인은 빨리 시위가 끝나고 사람들이 동해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텅텅 빈 가게를 채워줘 먹고 살게 해 주는 게 정치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