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가 국힘당 대선후보가 되자, '최악의 선택'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게 국힘당의 주어진 운명이다. 김문수와 한동훈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한동훈이 됐어도 똑같았을 것이다. 김문수 선택이 국힘당으로서는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한동훈이 뽑혔으면 정통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이 "차라리 이재명 찍겠다"며 이탈하고 신당을 만들겠다고 난리쳤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동훈은 윤석열에 의해 만들어진 후보였다. 대선 본선에서 '제 2 검사정권'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동훈 개인 자질이나 리더십도 대통령에 출마할 만한 재목감인지 의문이었다. 그는 언변이 좋고 논리적이나, 내게는 마치 공부 잘하는 학생이 책을 달달달 암기해서 떠드는 것처럼 들렸지 몸으로 체득돼 나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탈락한 한동훈에 대해 더 길게 논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김문수다. 김문수의 강점은 별로 흠결없는 사생활과 도덕성에다 국회의원 3번+경기지사 2번의 관록을 내세울 만하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뒤로 이재명 측의 집단폭주 상황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는 점도 김문수에게 유리하다. 이재명은 중도 보수 성향 국민에게 '당선되면 더 한 일도 벌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김문수는 강점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윤석열 계엄과 탄핵으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에서 그는 '계엄 찬성+탄핵 반대'의 대표주자로 낙인찍혀 있다. 경선 과정에서 그는 표를 의식해서인지 "윤의 계엄은 잘못됐다"고 말했지만,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부당하게 탄핵됐다'는 뉘앙스의 말을 또 했다.
김문수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선고가 있는 날까지도 윤석열이 복귀할 것으로 믿었던 사람이다. 그게 옳고 그렇게 돼야 한다고 확신했다. 김문수가 당선된다는 것은 '윤석열 잔존 세력의 부활'이 되는 셈이다.
이재명이 김문수 선출에 대해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당면 과제는 헌법파괴세력들의 책임을 묻고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것인데 완전히 반대로 가는 느낌”이라고 말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김문수의 캠프 진영은 친윤계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상임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탄핵반대파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선대위 인선조직을 보면 속된 말로 '수구기득권 떨거지들'의 집합체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란혐의 재판 중인 윤석열까지 김문수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들지 모른다.
여기에다 바깥에서 떠돌던 극우 성향 인사들이 한자리를 하려고 캠프에 더 꼬일 게 틀림없다. 김문수는 이들처럼 살아오지 않았으나 이들과 결코 결별하지 못할 것이다. 김문수의 성향이 이들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문수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극우 성향 목사 전광훈과의 관계다. 그는 한때 전광훈을 추종하고 전광훈당(黨)에 가입한 적도 있다. 과거 전광훈 집회에서 했던 발언들이 동영상으로 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
김문수가 지금과 같은 스탠스와 인적 구성으로 가면 조기대선에서 이길 확률은 0%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김문수가 태세 전환을 하거나 바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문수는 소탈해보이지만 얘기를 해보면 아집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는다. 좋게 말해 신념이고 소신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유연하지 않고 자기만 옳고 남의 조언을 아예 듣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바뀌지 않는다. 이재명은 반대편의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한다.
김문수의 살아온 이력을 알고 있는 내가 '감안해서' 봐주는 김문수가 이 정도다. 그런데 김문수를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김문수는 '윤석열 아바타'이고 '꼰대'이고 '라떼 과거에 사는 사람'이다.
앞서 내가 한동훈이 정권을 잡으면 '제 2 검사정권'이 된다고 표현한 것처럼, 이들에게 김문수가 정권을 잡는 것은 '제 2 윤석열 정권'이 된다. 중도와 젊은 층을 끌어안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김문수가 정말 대선에서 승부를 보고싶으면 심각하게 지금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이는 한덕수와 단일화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개혁신당 이준석이 김문수의 반사이익을 누릴지 모른다. 이준석이 대선 재목으로는 아직 약해보이지만 김문수보다 낫다는 평가가 점점 나올 수도 있다. 그 바람이 거세게 불면 국민의힘은 대선이 끝나면 해체되고 새로운 보수정당이 출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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