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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흠이 없는 지도자는 없다 더러운 흙이 묻은 뿌리보다는 아름다운 꽃을 보아줄 필요가 있다. 엄상익(변호사)  |  2025-05-08
<모세의 리더십>
  
  나는 가끔 친구들로부터 생생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거기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소년 시절부터 친한 두 친구가 우연히 강영훈 국무총리의 보좌관을 지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편한 자리에서 그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분이 총리를 마치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시는데 오래된 낡은 적산가옥이었어. 6·25전쟁 전에 구한 적산가옥이었지. 기와가 낡고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수리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인데 총리가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보좌관인 내가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어. 담당 대리가 집을 저당잡아야 하는데 건물이나 땅이 모두 담보가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보증을 섰지. 내 동생도 보증을 안 서주는 사람인데 말이야. 강 총리를 모셔보니까 참 청빈한 분이었어.”
  
  지도자의 본 모습은 가까운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한번은 총리가 여름 휴가를 저도라는 섬으로 가시는데 내가 수행을 했었지. 내가 먼저 예산을 배정받고 보고를 했지. 총리가 되면 휴가지 근처의 부대나 기관에 금일봉을 줘야 하는데 개인 돈을 줄 수는 없잖아? 원래 돈도 없는 분이고 말이야. 그런데도 총리가 하는 말씀이 내 돈을 쓰면 되지 예산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래도 보좌관인 내가 우겨서 예산을 만들고 집행을 했지. 강 총리는 예산을 써도 남은 돈을 모두 국고에 반납하시는 분이었어.”
  
  청렴한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강 총리가 아는 차관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 안타깝게 여기셔서 막 우는 거야. 그렇게 울음이 많으면서도 체육부 장관이 북한에 가서 술 먹는 자리에서 뱀장사 쇼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화가 나서 총리실 밖까지 들리도록 소리를 치시기도 하더라구. 그리고 내가 북한에 수행해 갔을 때 총리의 진면목을 봤어. 총리가 이북 출신인데 북한 당국이 밤에 몰래 북에 있는 동생을 데려왔더라구. 이산가족들이 많은데 총리라고 나만 특혜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시더라구. 속으로는 얼마나 만나고 싶었겠어.”
  
  그 자리에 있던 보좌관을 했던 또 다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해외공관에 있을 때 한번은 강 총리가 그곳으로 오셨어. 그런데 행색이 너무 초라한 거야. 내가 음식점으로 모시고 가서 설렁탕을 사드렸지. 그런 분이야."
  
  보좌관을 했던 친구 두 명은 그 무렵 강 총리의 장례식을 책임지고 돕고 있었다. 친구를 통해 좋은 지도자의 진면목을 본 것 같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는 좋은 지도자를 바라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대통령 후보들을 보면 괜찮은 재목들이 많은 것 같다. 힘든 환경을 뚫고 자라나 북향에서 거목이 된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고 할까. 아직 젊은 후보자들도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면 좋은 지도자가 될 것 같다. 역사적으로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인도의 간디나 명치유신을 성공시킨 일본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훌륭한 지도자였던 것 같다.
  
  내가 상정하는 좋은 지도자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세다. 그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대중의 변덕을 참아가며 민족을 이끌었다. 시기와 반역도 있었고 여성 스캔들을 들추는 측근의 모략도 있었다. 마침내 그는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면서 자신의 역할은 거기까지로 끝을 냈다. 벳브올 골짜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의 무덤을 지금도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아쉽게도 지도자를 못 키우는 풍토인 것 같다. 뉴스나 청문회를 보면 시기심 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대중들은 지도자들이 구름 위에서 떨어져 시장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보고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정치 풍토다. 인물이란 만들어지는 법인데 웬만한 인물이 나타나도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국민은 지도자가 될 사람을 키우는 기름진 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장점으로 단점을 덮어야 한다. 장점이 더 길기 때문이다. 더러운 흙이 묻은 뿌리보다는 아름다운 꽃을 보아줄 필요가 있다. 성경 속의 어떤 지도자도 흠이 없는 사람이 없다. 대한민국을 정신까지 끌어올릴 모세 같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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