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첫 대선후보 TV토론 이후 화제가 된 ‘호텔경제론’은 이재명 후보의 과거 황당 공약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2022년 5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왔던 이재명 후보는 지역공약으로 김포공항 이전을 내세웠다. 김포공항의 국내선 기능을 폐지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즉각 “왜 계양 선거에서 갑자기 제주도 관광산업을 고사시키겠다는 발상의 선언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비판했다. 수도권 주민들의 공항 접근성이 나빠져 제주도 관광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취지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재명은 “앞으로 비행기는 활주하지 않는다. 수직 이착륙하게 된다”면서 “새로운 항공 시대를 위해 김포공항 이전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밀고 갔다. 제주도는 해저터널을 연결해 가면 된다며 “해저터널을 할 경우 서울에서 제주까지 고속철도로 2시간 30분이면 간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더 황당한 근거를 끌어와 우기기를 지속하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태도였다.
3년이 흐른 지금의 ‘호텔경제학’ 논란도 비슷한 패턴이다. 이 후보는 내용의 허점을 지적하고 비판한 사람들을 “바보”라고 했다. 틀린 것은 내가 아닌 너희라는 식이다.
20일 이재명 후보는 “경기가 나쁠 때 소비를 진작하는 걸 ‘승수효과’라고 하는데 이를 모르는 바보들이 있다”라며 ‘호텔경제학’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경기가 이렇게 나쁘면 소비를 진작해서 동네에 돈이 돌게 해야 한다”라며 “(돈이 돌면) 똑같은 조건에서 더 나아진다는 것인데 이해를 못 하는 건지 곡해하는 건지 이상하게 해석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호텔경제학’ 논란은 16일 전북 군산 유세에서 이 후보 자신이 8년 전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언급하면서 시작됐다. 이 후보는 “돈이 도는 걸 경제라고 한다”면서 사례를 들었는데, ‘한 여행객이 동네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 지불 →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식품가게 외상값 10만원 지불 → 식품가게 주인은 10만원어치 치킨 구매 → 치킨집 주인은 신발가게 외상값 10만원 지불 → 신발가게 주인은 빵 10만원어치 구매 → 빵가게 주인은 호텔 외상값 10만원 지불→ 호텔은 여행객의 예약 취소로 10만원 환불’로 요약되는 내용이다. 그는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했어도 돈이 한 바퀴 돌면서 경제가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18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이를 겨냥해 “(이재명 후보의 호텔경제학은) 돈이 사라지지 않고 ‘한계소비성향이 1(소득 전부를 소비로 사용)’로 계속 돈다. 무한 동력인가”라고 물었다. 10만원을 받은 호텔부터, 식품가게, 치킨집 등이 연쇄적으로 그 돈 전부를 소비한다는 전제 조건부터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호텔 예약을 취소해도 돈만 돌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괴짜 경제학”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규재 정규재TV 대표(전 한국경제신문 주필)도 이 후보의 ‘호텔경제론’을 두고 “일종의 마술이고 잘못된 경제관의 본보기”라며 “경제는 우리의 삶이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삶은 절대로 개선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21일 자신의 SNS에 “골목길의 가게들이 승수효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재명 후보의 주장”이라며 “마술은 다시 호텔에 이르지도 못한 채, 다시 말해 호텔 업주에게 빚만 남긴 채 금방 사라져 버린다. 골목이 계속 돌아가려면 돈이 계속 들어와야 되는데 그 결과는 부동산 폭등 등 인플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케인스의 승수이론도 이미 70년대 거대한 인플레와 함께 파산한 신화”라며 “대불황은 2차 대전이 나고서야 치유되었다. 그 대가는 거대한 인구의 죽음이었다”고 덧붙였다.
‘호텔경제론’은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단순화 시킨 것인데, 그의 경제 공약은 ‘다 해줄게’로 요약될 정도로 곳곳에 ‘빚 만능주의’ 경제관이 깔려있다.
이 후보는 21일 인천 부평 지역 유세에서 “나랏빚이 1000조원이 넘었다는 소리를 하면서 절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무식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우리나라는 국가부채가 50%가 안 되는데, 다른 나라는 국가부채가 110%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공짜로 주면 안 된다는 희한한 생각 때문에 돈을 빌려만 줬다. 자영업자고 민간이고 다 빚쟁이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규재 대표는 채널A 라디오에 출연해 “이 후보가 연설에서 ‘국가 부채를 늘려서 써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아무리 대중 연설이지만 너무 쉽게 얘기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보다 국가 부채가 높은 미국이나 일본은 기축 통화 또는 국제 통화 국가”라며 “우리나라는 그냥 로컬 통화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국가 부도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민연금 지출 등이 본격화해 국가 부채가 상당히 늘어나면 안심하지 못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대선 TV토론회에서의 ‘기축통화국’ 발언 해프닝이 떠올랐다. 국가 부채를 두고 안철수 후보와 공방을 벌이던 이재명 후보는 “우리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국채 발행을 통해 국가 채무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기축통화국’이라는 황당한 근거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준석 당시 당대표는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기축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고 비꼬았었다.
3년이 흐른 지금 ‘기축통화국’ 주장은 빠졌지만, 국가부채를 더 늘려도 괜찮다는 이재명의 생각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호텔경제론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이준석 후보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렇게 지적했다.
“요즘 이재명 후보가 하는 말들은 일관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거에 문제 됐던 사건이나 발언을 다시 꺼내서 덤벼볼 테면 덤벼보라는 듯 우겨대는 겁니다. 이재명이 집권한다면 만들어질 세상은 그렇게 무서운 곡학아세의 세상입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제관은 언제나 위험하고 실험적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무책임하게 던지고,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그럴듯한 말'만 반복합니다. 그래서 늘 업자들이 환호하고, 국민들은 불안해집니다. 솔직히 말해, 본인이 뭘 알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조차 의문입니다. 마치 누군가 써준 것을 제대로 소화도 못한 채 던져놓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잼비디아'이야기, '수직이착륙기를 양산하겠다'는 황당한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것 아닙니까? 경제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정치인이 집권했을 때, 그 피해는 언제나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