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쓴소리를 달게 듣는 대통령>
김영삼 정권에서 공보수석 비서관을 지낸 윤여준씨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조선일보 기사를 봤다.
“문종수 변호사가 민정수석 비서관을 했어요. 이분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민심 동향을 보고한다면서 시중에서 하는 대통령에 대한 비아냥, 거의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그대로 전했어요. 대통령이 그 보고를 받을 때 무안하니까 팔짱을 끼고 천정을 바라봤죠. 회의에 참석한 비서관들도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숙였죠. 그래서 제가 한번은 민정수석 비서관인 문종수 변호사보고 말을 좀 순화시켜 할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면 나는 그냥 그만두고 집에 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대통령에게 가서 ‘저희가 듣기에도 섭섭한 말을 끝까지 들으시는데 어떻게 다 참으십니까?’라고 하니까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그럼 우짜노 그게 그 사람 직책 아이가?’ 하시더라구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직언을 한 민정수석 비서관은 좋은 참모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 국회의원이 대통령에 대해 심한 발언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해서 그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보고받은 대통령이 싱긋 웃으면서 어쩐지 그 무렵 입이 근질근질했다고 농담처럼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모습 같았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명예훼손으로 그 국회의원을 고소했다. 법정에서 나는 증인으로 나온 비서실장에게 정말 대통령이 고소를 한 게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비서관들이 과잉 충성한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씨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은 모두가 불쑥불쑥 치받고 자신에게 대든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쓴소리도 다 들어야 합니다. 그런 소통이 없으면 제왕적이라는 말을 듣는 겁니다.”
나는 삼십대 중반쯤 변호사로 있다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분의 조직에 들어가 잠시 일했던 적이 있다. 법률업무를 맡았지만 시중의 여론을 살피고 그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대안을 보고서로 작성하는 업무도 있었다.
우연히 대통령 후보에 대한 정보가 귀에 들어왔다. 사생활에 관한 문제였다. 그게 사실이고 폭로된다면 정치생명에도 영향이 클 것 같았다. 정보가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 먼저 확인해 보았다. 대통령 후보의 측근들을 만나보았다. 대통령 후보와 같이 일을 했던 동료들의 얘기도 들어보았다. 정보기관에서 은밀하게 수집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첩보도 알아보았다. 직접 관련자를 만나 확인해 보기도 했다.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나는 고민했다. 성경 속의 세례요한은 왕이 동생의 여인과 함께 사는 걸 지적했다가 죽었다. 목이 잘려 쟁반에 담긴 채 연회장의 노리개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걸 보면서 나는 왜 그가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생각했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다윗 왕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부하의 아내를 훔쳤다. 그리고 그 부하를 적의 손에 죽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단이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찾아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다윗은 그 말을 받아들이고 바로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잘못을 범했지만 들을 줄 아는 왕이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쓴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한밤중 나는 원고지를 앞에 놓고 고민했다. 제왕학에 대해 쓴 당태종의 정관정요를 보면 왕의 참모가 되는 사람이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가 들은 소리를 순화하거나 여과시키지 않고 일단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원고지 위에 내가 확인한 사실들과 의견을 써서 대통령 후보에게 올렸다. 다음날 나의 상급자가 나를 불러 말했다.
“대통령 후보께서 그걸 보시고 당장 당신 목을 잘라버리래.”
어쩐지 목이 근질근질했다. 그가 덧붙였다.
“직언을 하는 보고서를 내도 그걸 소화시킬 수 있는 인물에게 내야지 그렇게 무턱대고 지르면 안 되지.”
내가 몸으로 대통령 자격을 공부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는 출세가 불가능한 둔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