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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평등 쫓아 北으로 자유 찾아 南으로' 잘 쓰든 못 쓰든 누구나 글을 남겨야 한다. 이민복(대북풍선단장)  |  2025-05-31
<창작하지 말라! 너는 꼭 정치범 될 놈이다!>
  
  나는 나에게 가장 베스트셀러. 잘 쓰든 못 쓰든 책 내는 분들을 따라 배우려 한다. 북한에 있을 때 흔히 이런 말을 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야! 디지털 시대인 요즘의 사진은 너무 흔해 공해 수준이다. 이젠 글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글을 남기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말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세상인데 아로새겨진 글은 더욱 무섭다.
  
  중학교 때 읍내 도서관 책을 다 보았다고 할 정도였는데 그 채움이 넘쳐나 <준엄한 시련>이란 전쟁 소설을 쓰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도 머리 속에는 전쟁 영화 같은 상상이 나래를 쳤다. 남들은 혼자 있으면 심심하다는데 나는 더욱 흥이 났다. 요즘으로 말하면 메타버스 즉 가상세계에 잠겨 있었다. 전문학교 때에도 시와 문학적 글을 썼다. 하지만 공산 대학 출신 아빠는 이제는 참지 않으신다.
  
  <너 죽고 싶냐, 너 하나가 아니라 가족 모두를 죽이고 싶냐>.
  <창작하지 말라! 너는 꼭 정치범 될 놈이다.>
  
  아빠의 예언은 적중했다. 가장 정치범인 탈북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얼결이 아닌 지능적 탈북인 것으로 증명된다. 탈북하여 좋은 점은 말과 글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과 글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은 짐승과 같은 생활인 것이다. 탈북하여 이러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된 것을 금방 잊기도 한다. 이러한 망각이 탈북한 진정한 의미를 통채로 말아먹는다.
  
  그래서 글 쓰는 탈북자들을 남달리 존경한다. 잘 쓰든 못 쓰든 누구나 글을 남겨야 한다. 그게 역사이고 유산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가 아니어서 못 쓴다는 관습이 지배적이다. 작가와 역사가가 따로 없다고 본다. 국가와 사회는 개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개개인 사(私)가 모인 것이 곧 역사이고 유산인 것이다.
  
  북한에서 쓴 일기장이 뜻밖에도 후버연구소의 세계적 기록물로 선정될 줄이야. 장개석 총통 일기장을 비롯한 기록물들을 보관하는 곳이 후버연구소이다. 라디오 인터넷을 막아놓은 유일한 폐쇄 속의 일기장들이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 보고 놀라웠다. 몹시 제한된 속에서 기록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세계 기록물로 될 줄이야.
  
  북한에서 이런 기록물이라도 남겼으니 다행이지 북한 생활은 무(無)로 될 뻔했다. 누구나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無로 될 것이 뻔하다. 하루살이 벌레 인생, 아침 이슬 같은 인생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탈북인들의 책들을 보면서 나에게 채찍질 한다. 나의 글이 한반도의 역사가 되고 통일 운동이라는 자각을 새롭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준비하고 있다. 실례의 가칭으로 <평등 쫓아 북으로 자유 찾아 남으로>라는 부친과 그 아들인 나에 대한 일대기이다. 이 제목은 3년 전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에 의해서 한 면 기사화되기도 했다.
  
  또 최근 이하나 제1호 탈북 약학박사의 모녀간 책 <엄마의 노래>에서 더욱 영감의 자각을 받았다. 남한 출신인 부친의 월북 과정과 그 아들인 나의 탈북 월남 과정을 나와 가족 자랑거리가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 자료가 되도록 써야겠다. 북한에서 쓴 기록물과 사진도 있기에 이를 근거하여 작성하면 더욱 독특한 책이 되리라 본다.
  
  끝으로 주변 분들에게도 강권한다. 자기의 생애를 글로 쓰시라고 - 자기 글은 자기에게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 글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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