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마어마하게 춥던 2012년 2월, 청와대 입구쪽에 있던 중국대사관 앞에서였다. 옥인교회 바로 건너편. 내가 단식을 시작한 다음날이었다.
탈북대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여성이 있었다. 정말 작고 깡마른 몸매를 보는 순간 피카소의 '비둘기를 안은 소녀' 그림이 떠올랐다. 피카소가 그린 작품 속의 소녀가 그녀가 아니고, 그 소녀가 두 손으로 들고있던 비둘기가 바로 그녀같을만큼 그녀는 작고 야위어있었다.
그녀, 김은주를 처음 본 날은 그랬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작은 그녀는 누구보다고 강했다.
나와 나란히 서서 발언할 때면 내용도 당찼고, 표현력도 좋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눈물을 빗물처럼 줄줄 흘리면서도 그녀, 은주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만큼 그녀는 강했다.
11살에 유서를 써야 했을 만큼 미제라블했던 그녀의 과거가 그녀에게는 삶의 활력이자 에너지였던 셈이다.
그래서 믿었다.
반드시 은주는 북한인권의 대표 주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해냈다, 그녀는.
"11살의 아라리"라는 영화에서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프게.
슬프게.
그러나 의지가 느껴지게.
여전히 작지만 살도 오르고, 손도 따뜻해진 김은주씨.
김은주씨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이제 그녀는 소녀의 두 손 안에서 떨고있는 비둘기가 아니다.
자유, 인권, 정의를 위해 '평화'를 구축하러 다니는 평화의 사도, 그 상징인 비둘기가 된 것이다.
* AI 화면을 상당부분 괴기스럽게 녹여낸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아주 주효했다. 저예산에 영혼을 갈아넣고 있는 이용남 감독님과 김윤희 감독님 등 스탭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 사전 언질도 없이 영화가 끝나고 갑자기 호출을 당해 앞에 나가서 한두 마디 마이크를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