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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갇힌 인권] 北, 노동자 대거 파견 준비…인권 지적 눈가림 러시아 2만4200명, 중국 1500명 등 中·러가 對北제재 해제 요구하며 길 터줘. 데일리NK 기획취재팀  |  2025-06-01
<편집자주>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북한 당국이 2만 8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해외 파견 노동자 추가 송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부터 진행된 신규 인력 모집 사업은 현재 실질적인 선발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의 허점을 활용해 외화벌이를 본격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31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해외 노동자 파견은 10여 개 이상의 국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중 러시아에 파견되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구체적으로 보면 러시아 2만 4200여 명, 중국 1500여 명, 동남아(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 700여 명, 카타르·아랍에미리트 800여 명, 리비아 600여 명, 이란 130여 명 등이다.
  
  수도 평양을 포함해 전국 도별로 ‘뽄트’(할당)가 내려졌고, 숙련공과 2회 이상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이른바 ‘재탕’ 인력이 선발 우선순위에 들었다는 전언이다.
  
  1차로 준비된 약 5000명의 파견 대상자는 현재 당국의 최종 담화 발표만을 앞두고 있으며, 이후 추가로 선발 중인 3000여 명도 신체검사와 신원조회, 서류 심사 단계에 돌입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선발 기준은 역시 ▲기술 숙련도 ▲조직생활 기록 ▲평정서 ▲추천서 ▲사상동향 ▲건강 상태 등이다. 가족 중 탈북한 인원이 있거나, 간질·정신질환·전염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심한 저체중으로 영양실조가 의심되는 경우 등은 선발에서 배제됐다고 한다.
  
  선발에서는 여전히 뇌물도 통용되고 있다. 소식통은 “기본적으로 간부 지도원이나 자기 단위, 지역 간부를 통해 뽄트를 개인이 돈 주고 사야 한다”면서 “뒷돈(뇌물)은 딸라(달러)나 비(위안)로만 거래되는데 전반적으로 예년보다 2~3배가 뛰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뽄트 장사’는 결국 노동자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노동자들은 돈을 주고 해외에 나왔다는 생각에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고, 이는 강제노동으로 이어지는 구조적·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견뎌내더라도 그 대가가 개인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임금은 대부분 국가로 귀속되며, 실제 노동자 개인이 손에 쥐는 몫은 극히 제한적이다. 소식통은 “노동자들의 노임은 당 재정 보강과 일부 내각 및 성 중앙기관, 위원회, 단위별, 지방별 국가계획 건설 현장에 투입될 것”이라면서 “해외 파견 노동은 경제 운영의 주요한 ‘현금줄’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해외 파견 노동자 확대, 중국·러시아가 길 터주나>
  
  북한 해외 노동자 파견이 본격화된 배경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지원이 있다. 최근 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 해제에 긍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북한은 이 흐름을 ‘노동자 파견 확대’의 명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중로(중러)의 지지는 노동자 파견이 ‘정당한 주권행위’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명분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 노동자 체류 허용을 완화하거나 수용 규모를 확대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로씨야(러시아)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쟁 복구와 극동지역 건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우리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중러의 대북 제재 해제 요구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역내 영향력 확대와 미국 견제라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반제국주의 전선을 확대하자는 정치적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노동자 파견 확대는 중국과 로씨야에서도 일종의 ‘완충형 경제협력’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은 국제 제재망의 틈새를 파고든 체계적·전략적 행위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무력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합법적 경제교류’라는 외피를 씌워 강제노동 구조를 은폐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본지에 “지금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로 인해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해 있다”며 “젊은 군인들을 포함해 많은 인명이 전장에서 희생되면서 산업 현장 전반의 노동력 수급에 공백이 생겼고, 북한 노동력은 이를 메우기 위한 절실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노동자 파견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양국 간 상호 수요가 맞물린 결과”라며 “전시 협력의 연장선에서 노동자 파견을 통해 실리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 지적 ‘악의적 날조’로 규정하며 ‘보여주기식’으로 대응>
  
  국제사회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과 관련해 강제노동 및 인권 침해 문제를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나 유엔 인권이사회(HRC) 등 국제기구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자발성 없는 송출 구조, 임금 착취 문제를 주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적을 전면 부인하고 이에 대해 철저히 ‘부정’으로 일관한다는 방침이다. 소식통은 “공식적으로는 ‘악의적 날조’로 규정하고 대응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정부는 노동 조건 개선도 지시했고, 최근 관리일꾼(간부) 대상 강습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나섰다”고 전했지만, 실제로 파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개선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 중국 내 수산물 가공 공장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통해 심하게 다쳐도 작업을 멈추지 못하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현장의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실제로 북한은 ‘보여주기’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소식통은 “휴식일 보장과 월급 일부 현지 개인별 지급 허용 등 제한적 조정을 계약서에 밝히게 하고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철저히 비밀로 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라면서 “국제노동기구의 의견 제기에 대비한 증거를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동 조건이 개선됐는지와는 별개로, ‘개선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서류나 문서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적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은 제재를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형식적 장치로 국제사회의 시선을 피해가고 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실질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황에서 노동자 파견을 외교적으로 막기는 어렵기에 북한의 파견 노동자 실태를 꾸준히 추적·고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유일한 대응 수단”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특히 국제사회가 러시아에도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직접 제재보다 러시아에 비판적 여론을 조성하고 압박하는 방식이 더 실효적일 수 있으며,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러시아가 일정 부분 고려할 수 있는 변수”라고 의견을 밝혔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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