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이 화면에서 화 난 표정으로 내뱉었다.
“여러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죠. 그거 다 구라예요. 내가 75세인데 몇 년 전 하고도 건강이 확 달라졌어요. 비행기가 서서히 하강하지 않고 공중에서 툭툭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모르고 만든 카피예요. 속지 마세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칠십 고개를 넘고나서는 내 몸이 껍질을 쓴 거북이 같은 느낌이 다. 젊은 사람들은 운동을 하라고 한다. 나는 삼십대 중반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 왔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몸속의 나사들이 녹이 슬고 붉은 녹물이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화면에서 노인이 말을 계속한다.
“백세 청춘이라고 하면서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말에도 속지 마세요. 실제로 백 살이 넘은 노인이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예요. 한번 요양원에 가보세요. 의학적으로는 살았는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지어낸 말에 현혹되지 마세요. 아직 건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놀아야 합니다. 멋지게 노세요.”
그 노인은 세뇌되어 있는 노인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까 실버타운에 있을 때 나이 구십이 넘은 노인이 내게 해 주던 말이 기억의 바닥에서 안개같이 피어오른다.
“실버타운에 와 보니까 저승 가는 대합실인 느낌이 들어요. 내 인생은 어둠이 내리기 직전 잠시 황금빛을 뿜으며 바다로 잠겨 드는 태양 같다고 할까. 나는 지금 이 찰나의 순간을 즐기고 있어요. 인생들 대부분이 이런 찰나의 즐거움을 모르고 허둥거리다 죽음의 심연으로 빠져들죠.”
그 노인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알았다. 또 다른 노인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86세 때 자식들을 모아놓고 ‘이제 곧 죽을 것 같구나 내가 죽은 후에 거지잔치 한번 더해 줘라’하셨죠. 그 시절은 거지들이 참 많았죠. 할아버지는 매년 두 번씩 거지잔치를 했어요. 마당에 음식상을 차려놓고 인근의 거지들이 와서 먹고 마시게 했죠. 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거지 잔치를 했죠. 마지막에 거지들이 자진해서 할아버지 관을 메고 산으로 갔어요. 할아버지는 노년에 작은 나무배를 하나 만들어서 낚시를 하곤 하셨죠.”
노년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신선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존경하는 변호사 선배 한 분은 성경 속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흉내내 보겠다면서 노숙자들이 오는 무료급식소에 오천 명분의 식자재값을 기부하기도 했다. 거지 잔치를 했다는 노인의 손자가 말을 계속했다. 그도 팔십대 말의 노인이다.
“어떤 것을 즐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즐기고 타인의 장점을 칭찬하는 즐거움이 있죠. 좋은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어요. 늙었으면 늙은 대로 즐기세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세요.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게 되도 라디오라도 틀어놓고 음악을 즐기세요. 폐지를 줍더라도 반 지하방 깨진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저녁 노을은 부자집 정원에서 보는 하늘같이 똑같이 아름답지 않겠어요? 할 수 있는 걸 안 하면 못 하게 됩니다. 지금 할 일은 내일로 미루는 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내가 하룻 동안 얼마나 즐겼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월을 몸으로 겪어본 노인들의 지혜다. 나는 매일 어떻게 멋있게 놀까를 궁리한다. 매일 주어지는 하루가 그분이 주시는 선물이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근육과 순간순간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다를 볼 수 있는 눈과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것에 감사한다.
어제 저녁은 북평 오일장 주막 건너편 식당에서 김치제육볶음을 밥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감사한다. 어제부터 재즈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스윙 리듬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틀어놓고 오선지 위에 끙끙거리며 악보를 그렸다. 머릿속으로는 대충 이해가 됐다. 고등학교 때 호기심을 가졌었는데 대학입시 때문에 하지 못했다. 앞으로 나의 손과 발의 근육이 스윙리듬을 기억하게 만들 예정이다. 부드러운 재즈 반주를 꿈꾸면서 말이다. 노년을 멋지게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