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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막장 세상이라 하긴 했으나 차마 진짜일 줄이야 이 세상에 한 번 와서 살아보고 가는 것도 ‘생물학적 아버지'의 덕택이다. 무학산(회원)  |  2025-07-03
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자녀가 시신 인도 거부했다…로또 당첨되고도 고독사한 남성》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녀가 시신 인수하기를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때때로 막장 세상이란 말을 하기는 했으나 차마 진짜 끝장일 줄은 몰랐다. 가난하면 부지런히 일해 돈을 모으면 되고, 실패했더라도 다시 힘껏 노력하면 절반의 성공은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강상(綱常)은 다시 세울 수 없다. 옛 사람들은 나라가 무너지기 전에 강상부터 무너진다고 했다. 500년이 지나면 혹 다시 세울지라도, 그것은 지금의 강상이 아닌 변질된 다른 윤리일 뿐이다.
  
  혹 아비가 개망나니였더라도,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저런다면 자기는 자식에게서 존경받겠나. 아버지가 하는 것을 자식은 보고 배워 몸에 익히는데 자기의 훗날을 위해서라도 저럴 일이 아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父兮生我 母兮鞠我)”가 시경(詩經)에 있고 정철이 이를 받아,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 같은 은덕을 어디에다 갚사오리.”라고 노래했다. 어쩌면 효행도 유전일 수 있다.
  
  관계자가 고인의 자녀에게 연락했지만, 자식은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서 ‘우리 아버지 아니다. 생물학적 아버지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은 적 없고, 아버지가 우리를 키워준 적도 없다. 다 어머니가 돈 벌어서 우리를 키웠다. 서류로만 아버지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니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버지임을 인정하는 데에 ‘도움’을 기준 삼은 것은 철없는 오만이다. 자기는 자식에게 多大한 ‘도움’을 줄 모양인가?
  
  생물학적 아버지인 것은 인정했는데 이는 저 사람도 자기가 생물학적 자식임을 인정한 것이다. 사람도 생물인 바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관계이다. 말하자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최우선 문제이고 나머지 문제들 곧 아버지가 훌륭하냐 부자냐 유식하냐 하는 것들은 다 곁다리일 뿐이다. 아버지가 낳아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끗하여 개로 태어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영계기라는 사람이 사슴 갖옷을 입고 새끼 띠를 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공자가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고 물으니 답하기를, “하늘이 낸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첫째 즐거움이고, 남자가 높고 여자가 낮기 때문에 남자를 귀히 여기는데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둘째 즐거움이고,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거나, 강보에서 요절하기도 하는데 나는 아흔 살까지 살았으니 이것이 셋째 즐거움이오.”하였다고 한다.《열자》《태평어람》《언감유함》《예문유취》《패문운부》
  
  사람으로 낳아주었느냐가 중요하지 아버지의 도움은 그리 중요하지 않거니와 못난 자식이 그렇게 여긴다. 아버지의 도움이 더 중요하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40%는 생물학적 아버지만 되고 만다. (상위 계층은 국민의 10% 중위 계층은 50%). 해외 입양아들이 친부모를 찾으려 한국에 와서 친부모를 만나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 보는 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어떤 이는 끝내 친부모를 못 찾아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가는 모습 또한 눈물 짓게 한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KBS 방영, '이산가족 찾습니다'가 세계인을 울게 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생물학적 아버지' 운운할 수 있는 것도 생물학적 아버지가 있었으므로 그런 말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한 번 와서 살아보고 가는 것도 ‘생물학적 아버지'의 덕택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거기에 ‘도움’을 주는 아비라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만 사는 곳인가.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잖은가. 그랬으면 됐지 무얼 더 바라고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하나? 그러면 못 쓴다.
  
  내가 고답적인 관념을 추구했는가는 모르지만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소중히 하려는 세상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은 천륜이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요 도리요 끊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자식이 이에 반하는 언동을 할 때 죄다 부모에게서 원인을 캐내지만 실상은 거의 전부가 자식이 못나서 그런다. 자기 조상을 상놈이라 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자기 윗대를 양반이라 자랑한다. 이 마당에 자식이 잘났다면 자기 아비를 몹쓸 인간으로 만들겠나. 게다가 죽은 아비를.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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