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만에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임 대통령들이 취임 100일을 전후해 기자회견을 연 것과 비교하면 역대 가장 빠른 기자회견이다. 3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한다’는 주제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122분 동안 15개의 질문을 소화했다.
기자들과의 소통을 앞당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아쉽게도 이날 기자회견은 지루했고 주요 현안을 다루지 못해 맹탕이었다. 진행 방식에도 문제가 많아 지방지 기자 쏠림 현상이 나타났고, 중앙 일간지 및 방송사 기자들은 질문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답변이 장황하고 길었다. 첫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무려 16분간 답변했다. 나머지 90분 동안 14개의 질문을 소화했으니, 질문당 평균 6분 이상 답변한 셈이다.
질문에 대한 핵심 답변에 이르기까지 서론이 너무 길었다. 예를 들어 채널A 기자가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전환하는 개혁안을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추석 전 완료하겠다고 하는데 대통령도 같은 생각인지, 정성호 법무장관 지명을 보면 속도보다 부작용 없는 개혁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추진할 생각인지'를 물었다. 이날 나온 15개의 질문 중 그래도 가장 구체적이고 좋은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무려 9분 45초간 답변했는데 길고 장황한 답변은 질문의 핵심을 오히려 흐릴 정도였다. 검찰개혁 및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 대통령은 ‘검찰이 사건을 조작해 간첩 혐의를 뒤집어 씌우더라, 억울한 범인을 만들어 감옥살이 하게 만든다, 사법부도 법질서의 최후 보루인데 권력자에 의해 악용되었다’ 등을 주장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데 대한 여론의 변화, 수사를 경찰에 맡겼을 때의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마지막에 가서야 ‘추석 전까지 검찰개혁의 얼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국회가 입법적 결단을 할 사안이고 정부는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실질적 답변이 나왔다.
산케이 신문 기자의 ‘한일 협력’에 대한 질문에서도 이 대통령은 무려 7분 동안 답변했다. 기자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송환 문제에 대한 협력 방안과 한일수교 60주년을 맞은 공동선언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한 반면, 대통령의 답변은 너무나 포괄적이었다. 경제와 안보에서 동맹관계지만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과거 양국 관계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길었다.
기자들의 수준 낮은 질문도 기자회견을 지리하게 만들었다. 주요 현안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을 한 기자는 외신을 제외하고 채널A, 서울경제, 아시아투데이 기자 정도였다. 검찰개혁, 의료대란, 부동산 공급대책과 관련한 이들의 질문은 시의적절했다.
나머지 기자들의 질문은 주요 현안을 비껴간 포괄적이고 큰 덩어리의 주제가 대부분이었는데,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방안,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 제왕적 대통령제 보완 방안 등이었다. 이런 질문들이 대통령의 긴 답변과 결합되어 기자회견의 긴장도와 흥미를 떨어트렸다. 오히려 방한을 전격 취소한 마코 루비오 美 국무부 장관 이슈, 트럼프와의 관세협상,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문제, 중국 전승절 참여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이 나왔어야 했다.
기자회견 진행 방식도 문제가 많았다. 언론과의 사전 조율 없이 대통령실 출입기자 이외의 언론인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무작위로 명함을 추첨해 질문자를 선정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옥천신문 등 지방지 기자가 3번이나 질문할 동안 중앙 일간지 및 공중파 방송사 기자들은 단 한 번도 질문하지 못했다. 마지막에 겨우 연합뉴스와 뉴시스 기자가 질문 기회를 얻었으나, 이날 머니투데이·서울경제·채널A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언론사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용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첫 기자회견이었지만, 기존 연단을 없애 대통령의 권위를 낮추고 언론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불과 1.5m 앞까지 기자석을 배치함으로써 ‘직접 소통’ 의지를 드러낸 점은 긍정적이었다. 첫 회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 언론과의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