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향기를 뿜는 사람이 되는 법>
그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지난 이십년 사이 거의 보지 못했던 중고교 동기였다. 소년 시절의 추억이 같은 색깔로 물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도 여러 번 같이 갔었다. 대학부터는 각자 가는 길이 달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를 만나기 전날 밤 그와 함께 했던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려봤다. 까까머리에 검정교복을 입고 안국동 거리를 함께 돌아다녔었다. 기억의 서랍에서 어떤 일을 떠올려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할까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 우연히 참석했던 한 모임에서 몇몇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특별히 옷을 잘 입은 것도 아니고 화려한 직책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에게서는 귀티가 나고 인간적인 향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지 관찰해 보았다. 그 자리에 참석한 메이저 신문의 전직 사장이 있었다. 매일 하루에 원고지 칠십 장을 쓰는 노력가라는 소문이 난 분이었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씩을 던졌다. 대화를 얼마쯤 한 후에는 순간적으로 파악한 근거를 제시하며 중간중간 사람들에게 칭찬을 선물했다. 직설적이라기보다는 간접 조명같이 은은하게 상대방을 올리면서 자신은 내려갔다. 비즈니스적 차원의 태도가 아닌 것 같았다. 자연스러운 그의 인격이었다. 이상하게 그 자리에 온 몇 명 사람들의 태도와 인격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사회적이나 학문적으로도 그 분들은 어느 정도 지위에 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의 향기를 마주하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됐다. 나는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했다. 마음이 비뚤어져 있었다고 할까. 남과 비교하고 질투와 시기가 심했다. 성공한 친구를 보면 끌어내리고 싶었다. 남을 내 잣대로만 쟀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하고 비난하고 판단했다. 뒤늦게야 나는 눈이 약간 열린 것 같았다. 나의 숨겨진 추한 꼬리를 얼핏 보았다고 할까. 어쨌든 고치기로 했다.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을 한 마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한 방송에 출연했던 이재명 변호사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공장에 가면 다른 공원들이 아침에 빳다를 때렸어요. 낮에는 권투를 시키기도 하구요. 저녁에도 맞았어요. 그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얻었던 한 마디가 있어요. 점쟁이가 어머니한테 얘를 잘 키우면 나중에 크게 호강한다고 했어요. 동네 어른들이 이놈 귀가 부처님 귀네. 나중에 크게 될 거야라고 했어요. 그 말이 힘이 됐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인간의 뒤틀린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음습한 감정은 차디찬 비난의 말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는 먼저 그 축축한 감정을 햇빛에 드러내 보기로 했다. 가까운 친구가 장관이 됐다. 여러 명이 축하를 해주면서 칭찬했다. 나는 내 마음을 드러냈다.
“나는 그냥 네가 부러워. 속으로는 샘이 나고”
그 친구는 씩 웃으며 받아주었다. 속에 있는 끈적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기생하던 곰팡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남을 칭찬할 수 있게 되었다. 칭찬은 아부와 다르다. 사실을 제시하면서 칭찬하면 무리가 없다. 아부는 돌아서면 흉을 보는 것으로 바뀔 수 있다. 똑같은 사실도 어떤 프리즘을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엊그제는 강남의 자그마한 이태리 식당에서 나를 초대한 친구 부부를 만났다. 고등어 파스타가 맛있다는 집이었다.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손 교수, 내가 자네한테 감사할 게 있어.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무기정학을 받아 집에 있을 때 자네가 유일하게 나를 찾아와 주었어. 그때를 지금도 잊지 않아. 감사해.”
나의 진정한 마음이었다. 얘기를 듣고 있던 그의 부인 얼굴이 환해졌다.
“우리 이 이가 원래 잔정이 많아요.”
그의 부인이 화답을 했다. 내가 덧붙였다.
“중학 시절 같이 무전여행 비슷하게 떠난 적이 있는데 저 친구 참 용기 있고 당당했어요. 그때부터 벌써 자기 가치관이 분명하던 친구죠.”
사실에 근거한 칭찬이었다. 감사와 칭찬이 세월의 간격을 단숨에 없애고 우리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