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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생물학적 아버지와 소생(所生) 부모 밉더라도 사람 사이의 용어를 써야 한다. 무학산(회원)  |  2025-07-10
나는 7월 3일 여기 조갑제닷컴에《막장 세상이라 하긴 했으나 차마 진짜일 줄이야》란 졸문을 써 올린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의 아버지가 고독사했는데 그의 자식에게 연락을 하니,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는데 그의 대답인즉,
  
  “우리 아버지 아니다. 생물학적 아버지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은 적 없고, 아버지가 우리를 키워준 적도 없다. 다 어머니가 돈 벌어서 우리를 키웠다. 서류로만 아버지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니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행실을 꾸짖는 글을 써올렸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도 ‘생물학적 아버지’란 말이 적합한 단어가 아니다 싶었지만,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모르는 데다가 또 찾지도 못해서 어쩌지 못해 나도 따라서 ‘생물학적 아버지’라 쓰고 말았다.
  
  생물학에서야 ‘생물학적 아버지’라 쓰는 게 맞다. 유전학에서도 맞다. 그러나 사람인 다음에야 그럴 수 없다.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생물이라고 하지 않듯이, 부자 관계를 ‘생물학적 관계’ 식으로 표현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밉더라도 사람 사이의 용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아버지’를 대신할 용어를 모른다. 그러니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구경꾼마저 생물학적 아버지라 따라 말하고 말았던 것이다.
  
  과연 ‘생물학적 아버지’를 갈음할 용어가 없을까?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이미 조선시대에도 그에 해당되는 용어가 있었다. 이를 어제야 비로소 알고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며칠만 빨리 알았더라도 저 “생물학적 아버지”란 말을 비판할 때 썼으면 작히나 좋았겠나 하는 마음에 더욱 안쓰럽다.
  
  ‘생물학적 아버지’와 바꾸어 쓸 수 있는 단어는 ‘소생(所生) 부모’이다. 확실한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사전엔 등재돼 있지 않다. 사용하지 않으니 등재되지 않았을 수 있고, ‘소생 부모’가 두 단어이니까 등재 안 됐을 수 있다. ‘생물학적 부모’도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옛 문헌에 ‘소생 부모’를 쓴 경우가 많다. 몇 개만 예를 든다면 이렇다
  
  1. 조선왕조실록 세조 9년 계미(1463, 천순) 3월4일(계사)
  측실(側室)의 왕자(王子)도 소생모(所生母)를 위하여 복(服) 9월을 입는 제도가 있으며, 인후(人後)가 된 자는 소생 부모(所生父母)를 위하여 복(服) 기년(期年)을 입는 제도가 있으니,
  
  2. 국조보감(國朝寶鑑 國朝寶鑑卷之三十五仁祖朝 [丙寅四年]
  後者。爲所生父母服齊衰不杖期。况主上。直承大統。上繼宣祖。今於私親之喪。宜有壓降。當服齊衰不杖期。大臣三司交章。請從禮官言。於是上乃服杖朞。命綾原君俌主喪。○三月。啓運宮卒哭後。禮曹議上服色曰。五禮儀。內喪在先條。卒哭後白衣翼善冠烏角帶。自祥至禫。深染玉色衣。
  
  3.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大明律直解 卷第二十二 刑律訴訟361條 干名犯義고사경(高士褧)
  ,杖一百流三千里,加役三年。】其告謀反、大逆、謀叛,窩藏姦細,及嫡母、繼母、慈母、所生母殺其父,若所養父母殺其所生父母,及被期親以下尊長侵奪財産或毆傷其身,應自理訴者,竝聽告,不在干名犯義之限。 361-2 若告卑幼得實,期親、大功及女壻亦同自首免罪,小功
  
  4. 퇴계집(退溪集) 退溪先生文集卷之三十二書 答禹景善이황(李滉)
  前收而養之者。名之曰卽同己子。而其子女爲其所養父母。行齊衰三年。或所生父母在則降服期。然則爲母之養父母。亦依外祖父母例。服小功之服乎。伏望下誨。 此等變禮。無經據而率意言之。皆涉謬妄。但疑母旣以爲父母。子安得不以外祖父母服之耶。物格。物理之極處無不到。謬說改定
  
  5. 미호집(渼湖集)
  소후가의 시제는 지내지 않고 소생부모를 위해 복상(服喪)만 하도록 하였다
  
   6. 미호집(渼湖集)
  똑같은 기년인데, 소생부모를 위해 기년복을 입고 있을 때에는 소후가의 제사를 폐하고, 다른 백숙부들을 위한 기년복을 입고 있을 때에는 소후가의 제사를 폐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낳아 준 것은 명분과 은의가 무겁고, 기른 것은 가볍다.”[所生者重 而所養者輕矣] 《大明律集說附例 권7 70장》이것이 옛날 법률이라 해서 어찌 잘못이다 하겠는가? 저 사람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 아니다.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이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리고 조선시대 4대 문장가의 한 분인 장유 선생의 문집, 계곡집(谿谷集)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이와 함께 '어미는 아들로 인해 귀하게 된다(母以子貴).'는 한마디야말로 뒷날 왕들이 소생부모를 추숭하는 구실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 또한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소생부모’가 나오는 옛 문헌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가 밉고 싫더라도 싸늘한 ‘생물학적 아버지’보다 ‘소생 부모’ ‘소생 아비’ ‘소생父’가 그나마 냉정함이 덜하다. ‘소생부모’ ‘소생부’는 네 글자밖에 안 되지만 ‘생물학적 아버지’는 일곱 자이다. 한글전용 탓에, 한마디로 말하여 충분한 것을 두 마디로 말해야 알아 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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