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 들개였을까 아니면 천사였을까>
친구 부부가 있다. 그들은 아이가 없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우리 아들 사진 한번 보실래요?”
“예? 아들? 그러시죠”
나는 그 사이 부부가 아들을 낳았나 했다. 친구의 부인이 스마트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하얀 털에 귀가 쫑긋한 작은 개였다. 순간 속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고정관념이지 그 부부에게는 진짜 아들이었다. 부부가 끔찍하게 사랑을 쏟고 있었다.
동해 바닷가 단골 횟집의 육십대 부부도 개를 자식같이 키우고 있다. 개가 조금만 아파도 가게 문을 닫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힘들게 벌면서도 개의 수술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그 가게를 갈 때면 그 집 개가 좋아하는 닭고기 과자를 사들고 가기도 한다. 가게 주인은 자식인 개에게 잘해주는 걸 흐뭇해 한다. 개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학대하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서울역 앞의 노숙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길거리에 내가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강아지가 길을 잃고 서 있으면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모두 걱정을 하죠. ”
개들은 어떻게 대접을 받게 됐을까. 개들이 먹고살기 힘들어 인간세계로 오기 전 전체 회의를 했다고 한다. 인간과 함께 사는 순간 절대복종하고 맞아 죽더라도 주인을 사랑하자고 결의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우스개 소리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뼈가 들어있다. 순종과 사랑, 변하지 않는 충성심이다. 인간도 그걸 가지고 있다면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우농장에 간 일이 있었다. 여우를 키우는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여우가 개보다 인생을 더 단단하게 살아요. 개는 밥을 며칠 안주면 죽지만 여우는 밥이 없으면 인간에게 다가와서 개 흉내를 내면서 밥을 구걸하기도 하죠. 여우는 먹을 게 없고 궁해지면 빨리 포기하고 사람에게 길들여져요. 여우는 강한 위 때문에 며칠 된 닭을 먹어도 상관없고 쥐 새 어떤 것도 먹고 어떤 때는 풀도 먹어요. 구덩이를 파서 숨겨놓았다가 썩는 냄새가 나면 먹죠.”
길들여진다는 게 뭘까. 우리들의 생각보다 짐승들은 훨씬 영리한지도 모른다.
잊혀지지 않는 신비한 개가 있어서 오늘은 개의 얘기를 꺼냈다. 내 나이 육십이 되던 해 나는 미디언 광야에 있었다. 붉은 모래가 한없이 깔려있고 드문드문 거친 바위산이 버티고 있었다. 베두인 텐트에서 묵었던 나는 이른 아침 한 시간 정도 광야를 걸어 나와 모래 바닥에 앉아 기도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성경 속의 그 광야를 찾아간 것이다. 돌아가려고 하는데 길을 잃었다. 혼자였다. 바위산 귀퉁이에 있는 베두인 텐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앞에 검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가 아니라 맹수 같은 느낌이었다. 겁 먹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내 눈과 개의 눈이 마주쳤다. 개의 눈에서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게 걸음으로 옆으로 몇걸음 갔다.
개는 십미터쯤 거리를 두고 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당황스럽고 막연했다. 그때 개가 앞쪽으로 몸을 돌리고 나를 흘깃 뒤돌아 보았다. 개의 눈이 ‘나를 따라와’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혹시 베두인 텐트에서 키우는 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개는 내가 겁을 먹을까봐인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갔다. 어느 순간 바위산 귀퉁이의 베두인 텐트가 보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며칠 묵은 베두인 텐트에는 키우는 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를 안내한 것은 들개였다. 이상했다. 개가 베두인 텐트로 가지 않고 갑자기 옆의 모래언덕 위로 훌쩍 뛰어 올라가더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심이 되면서 개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헤어지면 끝인데 순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포켓에 들어있는 비스켓이 떠올랐다. 얼른 비스켓 한 개를 꺼내 들고 언덕 위의 개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개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다가 몸을 훌쩍 돌려 모래언덕 저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내가 겪었던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나보고 소설을 쓰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신비한 체험이었다. 그건 들개였을까 아니면 천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