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육군 장교로 오년간을 복무했다. 눈 덮인 최전선에서 혼자 순찰을 돈 적도 있다. 이 나라는 우리 군인이 지켜야 한다고 했다. 중학시절 미군이 자유월남을 지켜준다며 싸우다가 갑자기 가버린 뉴스를 봤었다. 미국을 믿던 월남 사람들이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려고 아비규환인 장면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여객을 태우고 가던 비행기의 기장이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가버리면 승객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남을 보면서 그 시절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깡다구가 있는 것 같았다. 카터 미국 대통령이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겁을 주니까 갈 테면 가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작은 고슴도치가 커다란 짐승들에게서 자기를 지켜내기 위해 가시로 무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군 장교로 있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육십만 대군이 몇몇 소수의 미군 장교에 의해 통제되고 조정됐다. 한국의 장군들이 미군의 명령을 받았다. 그들의 허락이 없이는 부대를 이동할 수 없었다. 미군부대가 서울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 장소에 전에는 일본 군대가 있었고 그 전에는 청나라 군대가 있었다. 우리가 과연 독립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그걸 어떻게 이해할까. 나는 우리 군대가 미군의 뒤에 숨어 홀로 서기를 못하는 것 같다고 느꼈었다. 주인의식도 책임감도 없어 보였다.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면 주눅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들의 풍요가 부럽기도 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우리의 군대는 미군이 아니라 우리가 지휘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는 맞는 말이었다. 미국이 반대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전권을 돌려받는 시기를 늦추었다. 그 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군의 홀로서기가 안된 것 같았다.
나는 정보기관의 책임자와 기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사석에 우연히 낀 적이 있다. 보도를 위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 폭격기가 날고 핵잠수함이 오는 걸 보고 북이 겁을 먹고 있는데 작전권이 우리에게 오면 상황이 전혀 달라져요. 지금은 인계철선 개념이라 북의 공격을 받으면 미군이 즉각 개입하지만 작전권이 이양되면 그렇지 않지. 미국 의회가 결정할 때까지 군사행동이 지연되는데 그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어 버릴 수 있지.”
“그래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있는데 전시 작전권이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그건 자존심의 문제죠.”
기자들의 반론이었다.
“전시작전권은 전시 상황에서 연합작전을 할 때 누가 지휘권을 가지느냐의 문제죠. 유럽도 전시 상황에서는 우리처럼 전시작전권이 없어요. 방위군인 나토의 지휘를 미군이 맡죠. 그렇다고 유럽 나라들이 주인의식이 없는 건가요?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돌려주는 데 반대하지 않아요. 미국의 의도를 잘 읽고 판단해야 합니다.
작전권을 돌려주는 게 유사시 미국이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는 데 더 유리하니까요. 그들은 미국의 국익이 먼저 아니겠어요.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 미군의 최첨단 군사기술과 무기들이 들어왔을 경우 한국군이 그걸 컨트롤할 능력이 있을까요? 미군이 연합사령관을 맡아야 미군 전력을 지원 받는데도 유리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면에서 우리 군대가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입니다. 북은 핵을 가진 자체로 이미 군사대국입니다. 대응하려면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구요.”
작전권 환수 연기의 배경이 그런데 있었던 것 같았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이지만 안보는 죽고 사는 문제다. 명분과 자존심만으로는 안된다. 장사꾼 트럼프가 한국이 파는 물건에 높은 세금을 붙여 뜯으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미군의 주둔비용도 확 올리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부딪쳐서 끈질기게 일을 해결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재명 정부는 미군의 작전권 환수를 대응 카드로 꺼내 들었다. 장사 속이 조금은 틀린 것 같다. 평택의 미군기지는 한국의 안보만을 위한 것일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건 아닐까. 트럼프에게 비싼 자릿세를 내라고 하면 어떨까. 작전권 환수의 문제도 저울질이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