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군의 對敵觀과 배치되는 말이다. 2016년 여야 합의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조항을 들어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최고인민회의(국회에 해당)가 ‘남조선인권법’을 제정하고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개입하고 들어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보겠느냐”고 했다. 국민의힘은 “북한 대변인 같은 말”이라고 평했다. 철저하게 북한정권의 관점에 서 있다는 뜻이다. 북한이 對南적화통일을 목표로 하여 한국의 보안법 폐지, 간첩 송환 요구 등 내정간섭을 수도 없이 했는데 이런 것은 언급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 북한동포의 인권을 향상시키려 하는 인류보편적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김정은의 인권을 자국민의 인권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는 의심을 부른다.
정 후보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남북 화해 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바꾸면서 북쪽의 대응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의 이른바 남북화해 정책이 낳은 것이 북한의 핵폭탄이었음을 애써 무시한 발언이다.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하고도 사과하지 않은 북한측에 이명박 정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이명박 정부의 강경 정책이 일부 원인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뜻이냐”는 한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고 했다. 정 후보자는 북한의 합의 위반으로 최종 파기된 9·19 남북 군사 합의를 되살리고, 북한과 대화를 위해 한미 연합 훈련을 조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 김정은을 이롭게, 대한민국과 국군에 불리한 생각이다. 수도 상공에 우리 공군기를 비행하지 못하게 한 합의는 적군에 항복한 나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 후보자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고, 이번에 임명되면 20년 만에 다시 통일부 장관이 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이날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이 비무장지대(DMZ)에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유엔군사령부의 DMZ 출입 통제권을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정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으로부터 “비군사적인 사안에 대해 유엔사의 DMZ 출입 통제권을 축소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의를 받고 그같이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기도지사 시절 평화부지사를 지낸 이재강 의원은 이날 “유엔사는 미국 주도의 군사조직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땅인데 DMZ에 들어가려면 유엔사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창설된 유엔사는 정전협정 집행을 맡고 DMZ를 관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과 인도적 지원 등을 이유로 육로로 북한으로 물자를 보내려 하자 유엔 對北 제재를 근거로 DMZ 통행을 막기도 했었다. 유엔사의 관할권은 실질적으로는 DMZ 내 군사분계선(MDL)의 북측 부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고, 북한은 유엔사의 법적 지위를 부인하면서 지속적으로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정 후보자는 유엔사의 법적 지위를 再考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 의원 주장에 “굉장히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유엔사의 평화 유지 기능을 도외시한 위험한 주장이다.
정 후보자는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해서도 “효력을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체결된 9·19 합의는 남북 긴장 완화 목적으로 MDL 일대 포사격 금지,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이 담겼다. 하지만 해안포,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입 등 북한의 합의 위반이 이어지자 2023년 윤석열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로 일부 효력을 중지시켰고, 북한은 다음 날 합의 파기를 선언했었다. 이날 “9·19 군사 합의를 북한이 무려 4330여 회나 위반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질의에 정 후보자는 “9·19 군사 합의 효력 정지의 전후를 보면 계엄을 한창 준비하던 때였다. 이것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의 도발 회수가 윤석열의 계엄 준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김정은 편을 들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일 있을까.
정 후보자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방안을 묻는 질문에 “2018년 한반도의 봄은 2017년 말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군사 연습을 연기하는 것을 미국에 제안하겠다’고 밝히면서 물꼬를 텄다”며 “(한미 연합 훈련 연기를) 정부 내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방부 장관의 영역을 침범하는 발언이고, 한미군사 연습을 축소하는 것은 미군과 한국군엔 불리하고 김정은과 북한군에 유리하다. 핵무장한 북한군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인 재래식 군사력 강화도 못하게 하려는 짓을 김정은이 아니라 대한민국 장관이 생각한다니!
통일부 명칭 변경과 관련해서는 “평화통일부도 좋은 대안이고 한반도부도 좋은 대안”이라고 했다. 통일부가 맨첨 만들어질 때는 국토통일부였다. 정동영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200만 kw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한 적도 있다. 어제 증언도 그 정도 수준의 순진성인지 무모함인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