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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은행원에서 神仙이 된 노인 '아파트와 퇴직금 덕에 신선놀음을 한다'는 댓글을 읽고. 엄상익(변호사)  |  2025-07-15
<글빵가게 주인의 조심스런 부탁입니다>
  
  동해 바닷가로 내려와 사년 동안 사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엊그제 점심으로 같이 콩국수를 먹은 옥계 신선 심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실버타운의 팔십대 노인 부부를 알고 있는데 부인이 남편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했대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뭘 해서 돈을 벌겠습니까? 폐지라도 줏을 수 있는 힘도 없구요.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요. 통장에 살 돈이 있는데도 그래요. 그걸 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참 딱하죠.”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건 알아도 몸이 부서지고 나이 먹은 건 못느끼는 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은행원으로 있다가 퇴직을 하고 여기 시골로 내려와서 산 것도 벌써 15년이 넘네요. 살다 보니까 나이도 팔십대 중반이고 이 곳 시골교회에서 가장 늙은 신도가 되어 버렸어요. 아들 또래의 목사님이 사람들을 만나 위로해 주는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서 거절하지 않고 그 역할을 열심히 담당하고 있죠.
  
  시골에 와서 살다보니까 저같이 노년을 바닷가에서 보내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 생활에서 실패해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여유가 없죠. 지역 주민들도 땅만 있지 돈은 없어요. 그러니 나만 보면 하는 소리들이 전부 돈 타령뿐이예요. 그런 사람들은 위로를 해 달라는 게 아니라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돈을 꿔달라는 거죠. 내가 은행원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눈치는 빨라요.
  
  저는 아예 미리 못을 박아둡니다. 팔십 넘은 늙은이가 무슨 돈벌이가 있겠느냐면서 돈을 꿔줄 수는 없지만 같이 걱정해 주고 같이 울어줄 수는 있다고 하죠. 저는 압니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돈 돈 하는 사람들은 바로 앞에 있는 푸른 바다도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밤하늘에 휘영청 뜬 달도 동전만큼 작게 보인다 이 말입니다.”
  
  나는 그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다. 그의 말이 차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엄 변호사도 너무 늦지 않은 적당한 시기에 바닷가 마을로 잘 내려오셨어요. 모든 건 느낄수 있는 나이가 있거든요. 바닷가의 부드러운 바람결이나 해당화 꽃향기를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죠. 변호사로 늙어서도 돈에 매여있으면 해가 지는 순간의 아름다운 인생 노을을 음미하지 못하고 갈 수 있어요. 저는 은행원으로 오십대 중반쯤 노조에 관련된 일을 했어요. 노조가 아니라 그 반대쪽이었죠. 그런데 완전히 샌드위치가 된 입장이었어요. 노조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죠. 정치권에서는 표를 생각해서 굴복하라고 압력을 넣죠. 그래서 오십대 중반에 사표를 던지고 시골로 내려온 겁니다. 강릉지점에서 대리를 할 때 나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 여기 옥계 바닷가였죠.”
  
  평범한 직장인이 그런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와 그 조직 안에서의 지위는 남자의 인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원에서 신선이 된 것이다. 그는 지금 팔십대 중반의 노인으로 아프고 쇠약한 몸이다. 서울로 올라가 큰 수술을 하고도 내려와 나와 콩국수를 먹고 있었다. 시설 좋은 서울의 병원들을 놔두고 그는 시골 마을의 자기집으로 돌아왔다. 성공한 자식들이 서울로 오라고 해도 사양하고 있다. 바닷가의 자그마한 그가 살던 집에서 삶을 마치려고 하는 것 같다. 그 삶의 모습과 가치관 인생 철학이 아름다워 더러 글에 인용했다. 나의 글빵을 만드는데 신선한 재료가 되는 분이었다.
  
  그런데 내 글빵가게 단골손님 중 한 분이 댓글로 보내준 평가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아파트와 퇴직금이 있었기 때문에 신선놀음을 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었다. 그가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일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노인의 시각에서 노인의 일을 글로 썼다. 내가 노인이기 때문이다. 그게 글빵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 것 같다.
  
  다양한 시각과 의견은 존중한다. 그렇지만 늙은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의 간격도 고려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좀더 아름답고 선한 쪽으로 시선을 같이 하시면 안될까. 글빵가게 주인으로서 단골손님에게 감사하며 조심스럽게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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