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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신선(神仙)이 되고 싶은 가붕개씨에게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  2025-07-17
한 분이 쓴 이런 글을 보고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강남에 살면서 저녁마다 벤츠로 아이를 대치동 학원에 데려다주고 가끔씩은 김영모 제과점이나 타워차이에서 식사를 하고 신세계 푸드마켓에서 장도 보고 양재천변을 산책하면서 신선놀음을 즐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밤입니다. 아, 삼성 서울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건강검진 받는 것을 빠뜨릴 뻔했군요. 강남 문턱조차 가본 적 없지만 타워팰리스는 타워팰리스가 아니라 스카이팰리스임을 잘 알고 있지요. 변호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분은 시골에 가면 빈 집도 많아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고 진정한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없는 신선은 있을 수가 없으니 시골에서의 신선놀음이란 언어도단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지요. 비록 한 마리 가붕개일지라도 양재천에서 서식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글을 쓴 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랬었다. 이십대 말 신촌의 쪽방에서 부부가 가난하게 살 때였다. 어느 날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쇼핑센터를 구경 갔었다. 그 화려함과 풍성함에 놀라고 기가 죽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비싼 외제승용차들이 가득했고 아름다운 한강가는 그들의 영역 같았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이방인 같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주택청약통장도 만들었다. 셋집을 전전하면서 아파트 분양공고가 나면 아내가 아이를 들쳐업고 달려갔다. 아파트를 가지는 순간은 감격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우리는 달동네라고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류 건설사가 짓거나 평수가 작은 아파트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차도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됐다. 벤츠는 부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그런 것들이 점점 세부적으로 추가되어 온 것 같다. 가는 빵집이나 건강검진을 받는 병원까지 확장됐다는 소린가.
  
  내가 더러 찾아가는 물리치료사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장 변호사가 구속이 됐어요. 거액의 고객돈을 횡령한 모양이예요. 빚 돌려막기를 하다가 그런 거 같아요. 검찰총장이 그 보고를 받고 당장 구속시키라고 그랬대요. 채권자들이 그가 사는 고급 아파트로 쳐들어갔대요. 알고 보니까 월세를 살면서 자기 것인 척 했대요. 그 아내가 하는 말이 자기는 한 번도 남편한테 생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궁하면서도 벤츠를 타고 다니고 룸쌀롱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거예요. 그 사무장 말로는 사건도 제법 있대요. 그런데 그렇게 된 거랍니다.”
  
  젊은 변호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헛것을 쫓다가 헛것이 된 건 아닐까. 그런 허영의 병균에 시골도 일부 오염된 것 같다. 시골 허름한 다가구 주택 앞을 지나다 보면 고급 외제승용차들이 더러 보인다. 바닷가에서 게를 쪄 파는 가게 여주인이 내게 아들과 딸에게 포르쉐를 사줬다고 자랑했다. 고급 차가 그들의 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나는 젊어도 봤다. 그리고 늙어도 봤다. 없어도 봤다. 그리고 속인의 속박을 받지 않을 정도 돈도 벌어보았다. 나는 강남의 아파트를 보며 거기 사는 사람들이 신선놀음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그가 말하는 유명 제과점의 빵이 맛있지만 나는 북평 오일장터에서 파는 호떡이 더 입에 맞는다. 강남의 고급 중식당의 짜장면보다 북평오일장터에서 파는 잔치국수도 괜찮다. 길들여진 입맛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도 부추를 썰어넣고 고추장에 들기름을 약간 넣은 보리밥을 비벼먹는 걸 즐겼다. 가난하던 어린 시절 엄마가 부엌에서 해주던 음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휴일이면 셰프를 쉬게 하고 직접 라면을 끓여 먹었다. 조용기 목사도 아프리카에 가서 고급 커피를 대접받고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주고 돌아와서는 봉지커피를 먹었다. 관념이 아니라 혀가 그렇게 느낀다.
  
  나는 중고인 소형 스파크를 싸게 사서 사년째 타고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만족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 아닐까. 신선이란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은 존재로 해석하면 어떨까. 껍데기와 알맹이의 차이를 알았을 때 당신의 영혼은 가붕개에서 신선으로 바뀔 것으로 믿는다.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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