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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윤석열은 최후진술에서 뭘 말할까 김재규는 민주화를 말했다. 전두환은 비상계엄요건의 판단권자를 말했다. 엄상익(변호사)  |  2025-07-30
“1.8평 감방의 받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간신히 식사하고 그 위에다 성경책을 놓고 읽는다. 최소한의 운동도 못해 소화에 애를 먹고 밤에 자리에 누우면 꼼짝달싹할 수 없다.”
  
  감옥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하고 그의 상황을 전하는 변호사가 쓴 글의 내용이었다. 인간이란 어떤 환경이든 닥치면 다 견뎌내게 되어 있다. 대기업의 엘리트 임원이었던 고교 선배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옥생활을 했다. 공사를 따기 위해 왕족에게 돈을 준 것이 뇌물죄로 기소되어 징역을 살았던 것이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사우디 감옥 안의 여름은 태양의 복사열로 지독하더군. 밤에도 질식할 정도였어. 매트리스에 물을 뿌리고 그 증발을 이용해서 조금 식히고 잤지. 겨울은 담요를 세 겹으로 덮어도 춥더라구. 그래도 익숙해지더라구. 하루 일과는 아침에 성경보고 책을 읽었지. 한편으로 되돌아보니까 일생 감옥만큼 그렇게 여유가 있었던 적이 없었어. 일정을 짜 가지고 생활하니까 몇 년이 금세 가더라구.”
  
  윤석열 대통령도 십년 이상 고시 낭인이었다면 감옥 안에서도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열악한 고시원 생활이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과 이념적 지향을 다시 점검해 최후진술에서 말하면 어떨까.
  
  칠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세 번의 내란죄 재판을 목격했다. 법무장교 시절 군사 법정에서 김재규 재판을 보았었다. 그 재판에 변호사로 참여했던 한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김재규가 법정에서 ‘저는 소신을 가지고 민주회복 국민혁명을 기도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 소신이 퇴색할 가능성이 있어 원형 그대로 재판을 받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더군. 그러면서 변호사들을 다 물리쳤어. 변호인단의 정치선전장으로 재판이 흘러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아.”
  
  김재규는 자신의 생각을 최후진술에서 또박또박 말했다. 그가 본 시대 상황과 그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했다. 나름대로 들을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형대에 올랐다.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쏴 죽인 그가 목숨을 건질 확률은 거의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을 때였다. 그 재판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에게 엄벌을 내려 다시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이려고 했어. 운동권 출신들을 동원해서 전두환을 사형시키라는 분위기를 만들고 담당재판장에게 압력을 가했지. 담당재판장은 착하지만 담력이 약했어. 압력을 버티기 힘든 성격이지.”
  
  어느 면으로는 사형이 기획된 재판일 수도 있었다. 당시 변호사들은 어땠을까. 그중의 한사람이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대법관 출신은 4억 원을 그리고 나머지 변호사들은 1억 원씩 수임료로 받았지. 변호사들 모임에 가 보니까 그 상황에서도 재판 준비보다 전두환에게 아부하기가 더 바쁜 거야. 아직도 국민들이 전두환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검찰이 청와대의 주구 노릇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라구. 하루는 변호인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입바른 소리를 했지. 국민 일부가 전두환을 동정할 수는 있어도 지지하는 건 아니라고 말이야. 그 말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그게 아팠는지 그 다음부터 나는 변호인단에서 배제됐어.”
  
  전두환은 변호사들의 입발림에 휘둘리지 않는 것 같았다. 최후진술에서 자기의 입장을 이렇게 말했다.
  
  “바뀐 정권의 시각에서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그리고 비상계엄을 판단하는 것은 정권의 주체 아닐까요? 당시 재야 세력은 위기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주체인 대통령은 위기가 있는 것으로 봤죠.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들을 단순한 법적인 잣대로 재면 안 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했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 그도 자신의 지지층에 마음을 기대고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검찰이 권력의 주구라고 공격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감옥 안에서 읽는다는 성경을 통해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떨어졌으면 좋겠다. 고난을 통해 새로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김재규는 민주화를 말했다. 전두환은 비상계엄요건의 판단권자를 말했다. 윤석열은 그는 최후진술에서 어떤 말을 할까.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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