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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지금은 미국에 '김유신의 결기' 보여줄 때! 차라리 관세협상의 판을 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보식(최보식의 언론) 편집인  |  2025-09-15
동맹국이고 세계 최강국인 트럼프의 미국이 요즘 우리에게 하는 행태를 보면 '삼국사기'의 다음 장면이 떠오른다.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 결사대를 무찌른 김유신의 신라군은 당나라 군과 합류하기 위해 당(唐)의 진영에 이르렀다. 연합군 총사령관인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은 신라군이 약속 시간을 어겼다고 신라 장수 김문영을 목 베려 했다. 신라군의 기합을 들이겠다는 심사였다.
  
  이 장면에 김유신이 도끼를 짚자 성난 머리털은 꼿꼿이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은 저절로 칼집에서 빠져 나왔다고 묘사돼있다.
  
  "대장군이 황산벌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는데 우리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먼저 당군과 결판을 지은 뒤에 백제와 싸우겠다."
  
  그러자 소정방의 부장(副將)이 겁을 먹고 발을 구르며 "신라 군사가 장차 변하려 합니다"고 하니, 소정방은 김문영을 풀어줬다고 한다.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 뒤 당나라는 신라까지 먹으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신라 조정은 강대국 당나라와 맞설지 굴복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무열왕은 "당나라 군이 우리의 적(백제)을 멸해주었는데 이에 맞서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나"라고 물었다. .
  
  이에 김유신이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미국이 공장을 지어주러 간 한국인 직원들을 쇠사슬에 묶어 체포한 것에 이어 25% 관세를 두들겨맞지 않으면 한국은 일시불로 현찰 3500억 달러(500조)를 입금시키라고 압박하는 장면을 보면, 차라리 관세협상의 판을 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트럼프의 미국에 '김유신의 결기'를 보여줄 때다.
  
  미국은 우리를 '함께 가는 동맹국'이 아니라 '호구'나 '현금자판기'로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가.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8월 말 현재 4163억 달러)의 84%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도 맺고 있지 않다. 대규모 외화 유출시 외환위기 위험이 있다. 이를 알면서 미국은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이 투자처를 정하면 우리가 45일 내 현금 3500억 달러를 송금하라는 거다. 그 투자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수익이 발생하면 한·미가 50: 50으로 수익을 나누고, 투자금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간다. 수익이 안 나면 자칫 투자금도 다 날릴 수 있는 구조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으로 가서 협상 파트너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만났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은 3500억 달러 투자 합의를 수용하든지 25% 관세를 내든지 둘 중 하나다. 봐주는 것 없다.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을 반복했을 것이다.
  
  러트닉 장관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 회장 출신이다. 협상 기술에서 잽이 안 될 것이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며 우리 장관을 어린애 갖고 놀 듯 했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과거에 못 살았을 때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미국의 협박(?)을 받지는 않았고 호주머니의 공깃돌처럼 취급되지는 않았다.
  
  일부 보수 진영은 이재명 정권이 싫다고 트럼프 편을 들고 있다. 이렇게 당하는 걸 오히려 고소하게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분식 포장한 것은 비판받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트럼프 편에 설 일은 아니다. 이재명 정권이 마음에 안 들어도 국익과 관련된 것이다. 보수 진영도 트럼프 스타일의 제국주의 패권에 맞서는 쪽에 서야 한다. '반미反美)'가 아니라 임기 4년의 트럼프 정권과 맞서는 것이다. '반트럼프' 여론 확산이 오히려 우리 정부가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좋으면 사인해야 하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느냐”며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는 말을 바꾸지 않았으면 한다.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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