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강도, 함경북도 등 북한 북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됐다. 하지만 경제적 부유층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은 여력이 안 돼 김장을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겨울철에 집마다 김치를 담그는 문화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강도 소식통은 31일 데일리NK에 “혜산에서는 25일 이후로 김장이 시작됐다”며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버티기도 힘겨운 주민들은 김장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강도를 비롯한 북부 지역은 내륙보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김장철이 다른 지역보다 열흘가량 앞선다. 올해도 북부 지역에서 김장이 가장 먼저 시작됐지만, 김장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소식통은 “예전에는 원래 이맘 때 집마다 김장용 배추를 들이고 절이느라 정신이 없고 김치를 너무 많이 담가서 독이 모자란 집들도 많았다”면서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김장을 포기하는 세대가 해마다 늘더니 이제는 김장하는 집보다 안 하는 집이 훨씬 더 많아져 다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생활난을 겪는 세대들이 많은데, 이런 세대들은 김장보다 하루 한 끼 해결이 더 시급한 형편”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아예 김장하지 않거나 배추가 생겼다 해도 양념을 만들 여력이 안 돼 소금에만 절여 먹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현재 혜산시에서 김장을 이미 했거나 하려고 준비 중인 세대는 돈주 등 경제적 부유층에 해당하는 세대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실제 혜산시의 한 인민반은 전체 30세대 중 김장을 했거나 하겠다는 세대가 5세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김장할 수 있는 세대는 양념에 명태나 가자미 같은 생선까지 넣을 수 있는 경제력 있는 세대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반면 끼니를 잇는 것조차 힘든 주민들은 배추나 무는 물론이고 고춧가루 같은 기본 재료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김장철마다 직장에서 배추나 무를 저렴하게 공급해 줬지만, 지금은 이런 공급이 끊긴 데다 시장 배추 가격까지 폭등해 일반적인 주민 세대는 김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얘기다.
북한 시장의 물가는 달러나 위안화 등 환율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데, 최근 환율이 크게 상승하면서 배추, 무, 고춧가루 등 가장 기본적인 김장 재료 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혜산의 한 시장에서 고춧가루 1kg은 북한 돈 6만 8000원에서 9만 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쌀 1kg 가격의 3~4배가량 되는 셈인데, 이렇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은 김장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심지어 일부 세대는 김장한 세대에서 쓰고 남은 배추 겉잎이나 무 자투리를 얻어다 겨우 국을 끓여 먹는 실정이라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소식통은 “버려진 배춧잎이나 무 자투리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마저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예전 같으면 대부분 쓰레기장에 버려질 것들인데, 지금은 자투리마저 귀하다”고 말했다.